기업들의 체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지면서 중소·중견기업뿐 아니라 업종 대표 기업조차 정상적인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회사채 공모 발행이 어려워지면서 비싼 이자를 무는 사모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

高금리로 돈 빌리는 기업 크게 늘어
3일 기업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말까지 신용등급이 떨어진 기업은 42곳에 달했다. 등급이 오른 곳은 16개사에 그쳤다. ‘하락기업 대비 상승기업 수 배율’(Up/down ratio)은 0.41배에 불과했다. 1998년 0.05배 이후 1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신용등급 강등 압력이 커진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 방식을 공모에서 사모로 전환하고 있다. 사모사채는 기업이 기관투자가나 특정인 등 일부 투자자와 개별 접촉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인수기관과 합의한 뒤 발행하기 때문에 공모 방식보다 높은 금리를 내야 한다.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국내 공모 회사채 발행 잔액은 작년 말 195조1230억원에서 193조5770억원으로 0.8% 줄었다. 반면 사모사채는 8조6290억원에서 11조240억원으로 27% 급증했다.

시공능력 4위 대림산업의 경우 올 들어 세 차례 회사채를 모두 사모 방식으로 발행했다. 고기능성 섬유 ‘스판덱스’ 세계 판매 1위인 효성도 수요 부진을 우려해 올 들어 공모 대신 사모로 조달 방식을 바꿨다. 태양광 발전 소재인 폴리실리콘 생산 국내 1위 OCI도 작년부터 사모사채만 발행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공모사채를 사려는 투자자도 없고 물량이 안 팔릴 것을 우려한 증권사들도 발행 주관을 기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과 해운, 철강, 건설업체들에 대한 채권 투자자들의 관심도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은 유동성이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이날 만기를 맞은 3000억원의 회사채를 차환하지 못하고 현금 상환했다. 국내 1, 2위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작년부터 정부의 ‘신속인수제도’ 지원에 의존해 채권을 발행하고 있다. 조선용 후판 과점업체인 동국제강은 작년부터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했다. 시공능력 6위 GS건설도 작년 2월을 끝으로 회사채 발행 실적이 없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