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학생들 마음에 상처 낸 '기숙사 반대'
“아르바이트로 원룸 보증금에 월세까지 대느라 바쁜데 무슨 주인집과 정이 생기겠나.”

대학 기숙사 신축 갈등을 다룬 기사(본지 11월1일자 A18면)가 나가자 한 포털사이트엔 35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자취·하숙생의 서러움을 토로하며 요즘 원룸·하숙 주인들과의 관계에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와 같은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취재 중 만난 대학가 자취생들은 더 이상 건물주를 친근한 ‘이웃 어른’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들 대다수의 눈에 건물주는 매년 따박따박 월세와 관리비를 올려 받으며 이익만 취하려는 ‘임대업자’에 불과했다. 올해 서울시내 원룸의 평당 관리비가 약 1만876원으로 아파트(5613원)의 두 배에 달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건물의 공실률이 올라가는데도 월세를 낮추기는커녕 더 올려 받으려는 주인이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원룸 주인과의 분쟁사례가 잇따르자 서울대 총학생회는 올해 ‘불량 원룸 블랙리스트’ 작성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의 기숙사 신축 반대는 학생들에겐 이기적인 행태로 보일 수밖에 없다.

주민들도 학생들의 따가운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이화여대의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던 한 주민대표는 “단순히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는 건 우리로서도 명분이 없는 걸 잘 안다”며 신축 부지의 환경 파괴 문제를 반대 이유로 내세울 수밖에 없던 배경을 설명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주민이 학생들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달 30일 신촌에서 열린 기숙사 문제에 대한 주민 토론회에선 한 학생이 “방에 문제가 생겨도 집주인과 분쟁이 생길까봐 얘기하기 꺼려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자 한 주민대표는 “우리가 그동안 잘못해온 점도 적지 않다”고 인정했다.

최근 기숙사 신축을 둘러싼 갈등은 대학가 주민들에게 분명 위기지만 동시에 비싼 등록금과 주거비로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의 처지를 제대로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들이 각박한 임대업자로 남을지 아니면 따뜻한 이웃 어른으로 돌아올지는 앞으로 행보에 달렸다.

오형주 지식사회부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