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 시장수요 반영한 대학정원 조정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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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호학회 부회장 선출된 김성도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장
인접 학문 분야와 교류 막혀있어
학부→학과 환원은 '실패한 실험'…대학·중고교 아우르는 개혁 필요
인접 학문 분야와 교류 막혀있어
학부→학과 환원은 '실패한 실험'…대학·중고교 아우르는 개혁 필요
도처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의 중요성을 외치면서도 정작 인문학 전공자는 취직이 힘든 세상이다. 최근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제12차 세계기호학 학술대회’에서 세계기호학회 부회장으로 선출된 김성도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장(언어학과 교수·사진)은 이 상황을 이렇게 분석했다.
“요새 인문학은 과학기술, 경제·경영이란 세상 속 ‘두 개의 엔진’을 점검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상을 이끄는 주인공은 아닙니다.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일을 해야죠.”
세계기호학회는 ‘장미의 이름’ 등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언어학자 움베르토 에코, ‘슬픈 열대’ 등을 쓴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 등 세계적 인문학자들이 1973년 만들었다. 이듬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언어학은 포스트모던 철학, 정신분석학, 문화이론 등 인문학 전반의 밑바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학문이다. 전자사전 등에서부터 최근에는 ‘시맨틱 웹(지능형 검색)’ 등 공학적으로도 응용되고 있다.
김 소장은 고려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언어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그는 폐과, 정원 축소 등 대학가와 취업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문학도의 위기’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국내 대학의 인문학 전공학과들은 구조가 왜곡돼 있어 학문 본질에 접근을 못 해요. 선진국과 상상 이상으로 차이가 납니다.”
영어영문학과의 셰익스피어 전공자와 언어학과의 음성학 전공자 간 교류가 전무하다는 것 등이다. 그는 “파리10대학만 해도 언어학과는 인기 전공이지만 국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비인기학과에 머물러 있다. 학풍, 문화 자체가 다른 건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다시 돌아간 고려대를 두고는 “얻은 게 없는 실패한 실험”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교육제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했다. “(인문학 전공은) 계속 연구할 사람을 빼고 사회 각 분야 수요조사를 해서 정원을 조정하는 게 맞습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인문학 지표’ 같은 주기적 조사를 해서 취직 지도를 만들어요. 그게 순리입니다.” 시장에서 원하지 않는데 계속 이 시스템으로 가면 국가적, 개인적 낭비라는 것이다.
“실업률 해소를 위해서는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대학 진학률을 낮춰야 합니다. 또 중·고교를 포함해 교육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힘들다는 게 문제죠.”
김 소장은 계속 직설화법을 구사하며 공학과 인문학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기호학에 기반해 세상을 논한 책 ‘시뮬라시옹’을 쓴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를 언급했다.
“보드리야르는 미국 디즈니랜드를 허구·가상실재(시뮬라시옹)라고 했는데, 그게 왜 허구의 세계입니까. 인간적으로, 공학적으로 엄청나게 연구해서 만든 흥미로운 현실적 결과물이지요. 다만 인간에 대한 치열한 연구가 없다면 공학은 공허해지기 쉽습니다. 직관적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만든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도 결과적으로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이런 점에서 저는 인문학을 ‘인간학’이라고 불러요. 인간학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요새 인문학은 과학기술, 경제·경영이란 세상 속 ‘두 개의 엔진’을 점검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상을 이끄는 주인공은 아닙니다.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고 그에 맞는 일을 해야죠.”
세계기호학회는 ‘장미의 이름’ 등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언어학자 움베르토 에코, ‘슬픈 열대’ 등을 쓴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 등 세계적 인문학자들이 1973년 만들었다. 이듬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언어학은 포스트모던 철학, 정신분석학, 문화이론 등 인문학 전반의 밑바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학문이다. 전자사전 등에서부터 최근에는 ‘시맨틱 웹(지능형 검색)’ 등 공학적으로도 응용되고 있다.
김 소장은 고려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언어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그는 폐과, 정원 축소 등 대학가와 취업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문학도의 위기’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국내 대학의 인문학 전공학과들은 구조가 왜곡돼 있어 학문 본질에 접근을 못 해요. 선진국과 상상 이상으로 차이가 납니다.”
영어영문학과의 셰익스피어 전공자와 언어학과의 음성학 전공자 간 교류가 전무하다는 것 등이다. 그는 “파리10대학만 해도 언어학과는 인기 전공이지만 국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비인기학과에 머물러 있다. 학풍, 문화 자체가 다른 건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다시 돌아간 고려대를 두고는 “얻은 게 없는 실패한 실험”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교육제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했다. “(인문학 전공은) 계속 연구할 사람을 빼고 사회 각 분야 수요조사를 해서 정원을 조정하는 게 맞습니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인문학 지표’ 같은 주기적 조사를 해서 취직 지도를 만들어요. 그게 순리입니다.” 시장에서 원하지 않는데 계속 이 시스템으로 가면 국가적, 개인적 낭비라는 것이다.
“실업률 해소를 위해서는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대학 진학률을 낮춰야 합니다. 또 중·고교를 포함해 교육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힘들다는 게 문제죠.”
김 소장은 계속 직설화법을 구사하며 공학과 인문학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기호학에 기반해 세상을 논한 책 ‘시뮬라시옹’을 쓴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를 언급했다.
“보드리야르는 미국 디즈니랜드를 허구·가상실재(시뮬라시옹)라고 했는데, 그게 왜 허구의 세계입니까. 인간적으로, 공학적으로 엄청나게 연구해서 만든 흥미로운 현실적 결과물이지요. 다만 인간에 대한 치열한 연구가 없다면 공학은 공허해지기 쉽습니다. 직관적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만든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도 결과적으로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이런 점에서 저는 인문학을 ‘인간학’이라고 불러요. 인간학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