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디플레이션 늪을 피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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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저물가 속 경기침체 공포
수도·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 적기
서민층은 맞춤복지로 지원해야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
수도·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 적기
서민층은 맞춤복지로 지원해야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
한국은 디플레이션 늪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 있는가.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경고등이 켜진 상태에서 한국도 전년 대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3개월째 1%대에 머물러서인지 그런 염려가 나오고 있다. 이것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치(2.5~3.5%) 하단에도 못 미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물가상승률이 낮은 것은 주로 단기적 변동이 심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 때문이다. 그것을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은 2%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낮은 물가상승률이 한국에 ‘축복’인 측면도 있다. 국제 원자재가격 하락이 교역조건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큰 비용을 치렀다. 교역조건이 악화된 탓에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낮았던 것이다. 1997년 4분기에 외환위기가 일어난 후 2011년까지 14년 이상 GDP는 연평균 4.3% 증가했지만, GNI는 연평균 3.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던 것이 지난 2~3년 사이에 사정이 역전됐다. 2012년 1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GDP는 연평균 2.9% 증가했는데 GNI는 3.5% 늘어났다. 한국인의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소득은 GNI인 만큼 지난 2~3년은 그전 14년간보다 실제 국민생활이 더 빨리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를 밑도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물가안정 목표치를 3%처럼 플러스로 정하는 것은 그에 따른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구조조정을 쉽게 해 준다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나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서 실질임금을 깎아야 하는 경우 물가상승률이 3% 정도면 명목임금을 동결하거나 소폭 올리더라도 실질임금 상승률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반면 물가상승률이 낮으면 명목임금 자체를 깎아야 하는데 이것은 극히 어렵다.
어떻게 물가상승률을 올릴 수 있을까.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가 국회에서 밝혔듯이 국제 원자재가격 하락 같은 공급 측면 요인을 금리인하로 대처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 그렇다고 국제 원자재가격이 곧 상승세로 반전될 것 같지도 않다.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의 주원인은 중국의 고도성장이었는데, 이제 중국의 경제성장 감속은 되돌리기 어렵다.
이런 구도 하에서는 ‘공공요금 인상’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부 공공요금 인상이 언젠가는 불가피한 사정이라면, 사상 최초로 공급 쪽에서 물가 하락 요인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이 인상의 적기다. 교역조건 향상으로 GNI가 느는 것은 그만큼 ‘감세’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감세 효과가 발생하는 동안 공공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올려야 할 공공요금은 어떤 것이 있는가. 무엇보다 너무 싸서 자원을 낭비하는 측면이 있는 수도나 전기 요금 등이 있다. 사회적 비용이 높다는 점에서 담뱃값도 비슷하다. 물론 여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다. 공공요금 인상은 서민층에 상대적으로 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형평성을 위해서는 직접 서민층을 돕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맞다. 서민층 지원을 위해 공공요금을 낮게 유지하면 부유층까지 이득을 보게 된다. 그 결과가 공기업 부채 등으로 나타나면 결국 서민을 포함한 전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직접 서민층을 돕는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기초생활 보장 같은 복지 확대다. 그러기 위해 재정 부담이 필요하면 증세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증세는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부유층이 더 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디플레이션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같이 얽혀 있다. 이들 문제는 모두 잘 알려진 것들이다. 막연히 ‘일본처럼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엮어서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디플레이션을 피하는 길이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leejm@yonsei.ac.kr >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물가상승률이 낮은 것은 주로 단기적 변동이 심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 때문이다. 그것을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율은 2%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낮은 물가상승률이 한국에 ‘축복’인 측면도 있다. 국제 원자재가격 하락이 교역조건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큰 비용을 치렀다. 교역조건이 악화된 탓에 국내총생산(GDP) 증가율보다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지속적으로 낮았던 것이다. 1997년 4분기에 외환위기가 일어난 후 2011년까지 14년 이상 GDP는 연평균 4.3% 증가했지만, GNI는 연평균 3.2%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던 것이 지난 2~3년 사이에 사정이 역전됐다. 2012년 1분기부터 올 2분기까지 GDP는 연평균 2.9% 증가했는데 GNI는 3.5% 늘어났다. 한국인의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소득은 GNI인 만큼 지난 2~3년은 그전 14년간보다 실제 국민생활이 더 빨리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를 밑도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물가안정 목표치를 3%처럼 플러스로 정하는 것은 그에 따른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구조조정을 쉽게 해 준다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나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서 실질임금을 깎아야 하는 경우 물가상승률이 3% 정도면 명목임금을 동결하거나 소폭 올리더라도 실질임금 상승률은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반면 물가상승률이 낮으면 명목임금 자체를 깎아야 하는데 이것은 극히 어렵다.
어떻게 물가상승률을 올릴 수 있을까.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가 국회에서 밝혔듯이 국제 원자재가격 하락 같은 공급 측면 요인을 금리인하로 대처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 그렇다고 국제 원자재가격이 곧 상승세로 반전될 것 같지도 않다.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의 주원인은 중국의 고도성장이었는데, 이제 중국의 경제성장 감속은 되돌리기 어렵다.
이런 구도 하에서는 ‘공공요금 인상’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부 공공요금 인상이 언젠가는 불가피한 사정이라면, 사상 최초로 공급 쪽에서 물가 하락 요인이 발생하고 있는 지금이 인상의 적기다. 교역조건 향상으로 GNI가 느는 것은 그만큼 ‘감세’를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감세 효과가 발생하는 동안 공공요금을 인상하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올려야 할 공공요금은 어떤 것이 있는가. 무엇보다 너무 싸서 자원을 낭비하는 측면이 있는 수도나 전기 요금 등이 있다. 사회적 비용이 높다는 점에서 담뱃값도 비슷하다. 물론 여기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다. 공공요금 인상은 서민층에 상대적으로 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형평성을 위해서는 직접 서민층을 돕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맞다. 서민층 지원을 위해 공공요금을 낮게 유지하면 부유층까지 이득을 보게 된다. 그 결과가 공기업 부채 등으로 나타나면 결국 서민을 포함한 전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직접 서민층을 돕는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기초생활 보장 같은 복지 확대다. 그러기 위해 재정 부담이 필요하면 증세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증세는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부유층이 더 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디플레이션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같이 얽혀 있다. 이들 문제는 모두 잘 알려진 것들이다. 막연히 ‘일본처럼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엮어서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디플레이션을 피하는 길이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