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수상한 기술금융
기술금융이 수상하다. 금융위원회가 “모뉴엘 사태와 기술금융은 관계가 없다”고 선을 딱 긋는 것부터가 그렇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들린다. 어떤 사고든 교훈을 찾자고 들면 왜 관계가 없겠나. 얼핏 봐도 중소기업 자금지원이고, 정부가 강력히 밀고, 정책 금융을 동원하고, 은행이 실적 짜내기 경쟁을 벌이고 하는 게 비슷하지 않은가.

은행의 기술신용대출 건수와 대출액 잔액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지난 7월 말 486건, 1922억원에서 9월 말 3187건, 1조8334억원으로 확 불어났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면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말했듯이 금융위가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매일 대출 실적을 보고하라고 다그치는데 어느 은행이 거부할 수 있겠나.

은행만 들볶는 금융위

은행은 속앓이를 하는 눈치다. 신 위원장은 과거 1년 이상 여신거래 실적이 없었던 신규기업 대출이 늘어나고 있다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럴수록 은행은 더 부담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은행의 고민은 기술금융 대출 중 기존 거래기업이 상당하다는 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금융위의 기술금융은 정부 지정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이 산출한 평가 등급을 바탕으로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주라는 제도다. 신 위원장은 이를 통해 은행의 낡은 담보대출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말한다. 취지는 그럴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기술금융의 본질이 원래 은행이고, 대출이냐는 것이다.

기술금융의 특성이 기술의 불확실성, 시장의 불확실성인 건 교과서에도 나온다. 그래서 이자율을 통한 중개기능 작동이 어렵다고 한다. 고위험, 고수익 분야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금융위는 TCB의 평가를 믿고 은행더러 대출을 해주라는 것이다. 물론 TCB가 모든 ‘정보비대칭성’을 해소해 준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술을 가진 기업은 기술을 과대평가하기 마련이다. 또 기술을 평가하는 기관은 자기 자금을 대는 것도 아니므로 평가를 정확히 해낼 유인이 작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자금 공급자가 기술을 가진 기업, 기술평가기관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은행이라면 더할 것이다.

본질은 '벤처캐피털' '지분 투자'

물론 기술 소유자와 자금 공급자가 동일인이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게 아닌 경우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바로 벤처캐피털이다. 지분 참여로 유인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것이다. 기술금융의 중심이 ‘은행’과 ‘대출’이 아니라 ‘벤처캐피털’과 ‘지분 투자’에 있다고 하는 이유다.

기술평가만 해도 그렇다. 금융위는 정부가 지정한 TCB로 평가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기술평가자도 경쟁하고, 그 성과를 공개해야 한다. 자금 공급자 역시 기술평가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금융위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 금융위는 또 기술평가가 마치 기술금융의 시작인 양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다. 인수합병, 기술거래 등이 촉발돼야 기술평가 시장이 생겨난다.

이쯤 되면 금융위의 기술금융이 과녁을 잘못 잡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애꿎은 은행만 닦달하는 꼴 아닌가. 혹 금융위는 창조금융을 ‘안 되면 되게 하는 금융’으로 착각하는건 아닌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