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프리미엄 김밥
지금은 국민간편식이지만 그 시절 김밥은 별식이요 특식이었다. 사이다 한 병과는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맨밥에 김치 된장찌개가 일상이었던 여린 속은 모처럼의 탄산음료에 금세 코끝까지 짜르르해졌다. 그럴수록 김밥은 더욱 감칠맛이었지만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봄소풍, 가을운동회… 중장년층에게 김밥은 유년기의 행복처럼 남아있다.

햄도, 참기름에 비빈 밥도 오래되지 않았다. 소금 간한 밥에 시금치 단무지 달걀 어묵 정도였다. 소고기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이렇게 다양하지도 않았지만 별미였다. 우리 입맛에 인플레가 생기기 전이었다. 그때는 음식 투정은커녕, ‘맛있다!’는 말조차 함부로 못 하게 했던 가풍도 많았다. 귀하고 신성한 것이 음식이었다. 끼니를 건너뛰는 이웃도 적잖았다. 그런데 맛이 있다없다는 타령이 다 뭐냐! 늘 인자한 할아버지였지만 그때만큼은 불호령이 떨어졌던 시절, 그래도 김밥은 맛있었다.

김밥의 유래는 명확지 않다. 한국고유설에 일본전래설도 있다. 경상도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광양 토산물로 김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조선시대에도 김은 먹었다. 다만 지금 같은 김밥은 근대 이후에야 자리잡았다는 게 중론이다.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한국형 패스트푸드 김밥은 국민의 사철 메뉴로 성장했다. 질적으로도 진화 중이다. 한때 명동 충무김밥에 이어 광장시장 마약김밥이 맛집 리스트에 당당히 끼더니 이젠 고급 김밥집도 흔해졌다. 한 줄에 1500~2000원짜리 레귤러가 많지만 3000~4000원대 프리미엄 김밥집도 급증세다. 체인점 증가도 주목된다. 바르다김선생, 고봉민김밥人 같은 고급 김밥체인은 창립 수년 만에 가맹점이 수백개다. 이러다가 미국 대중식 햄버거점 이상으로 보급될지 모르겠다. 맥도날드 매장은 미국에만 1만4000여개이니 김밥시장도 달리기 나름이겠다.

고급화로 나가면 시장도 만만찮을 것이다. 벌써 고급형은 남해 청정바다의 김, 저염 햄, 무항생제 달걀 하는 식재료로 속을 채워간다. 서울 강남에는 1만5000원짜리 김밥도 있다고 한다. 건강을 보증하고 신선도를 증명하면 ‘슈퍼울트라 하이프리미엄 김밥’인들 안 팔리랴. 이쯤 되면 떡볶이와 순대판 사이의 분식집 김밥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5000달러짜리 햄버거가 선보인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최고급 와규에 푸아그라가 깔리고 송로버섯 소스에 포도주까지 곁들여지면서 500만원짜리가 됐다. 김밥이라고 한국서만 맴돌라는 법도 없다. 보기에도 예쁘고 맛은 환상적인 김밥을 세련된 그릇에 담아 세계인의 입맛 눈맛을 함께 잡았으면!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