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z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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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괴짜’ 박사로 통했다. 30년 넘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있으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팠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안동소주 한산소곡주 등 전통주 연구에 몰두한 일은 잘 알려졌다. 그게 끝이 아니다. 남원추어탕과 춘천닭갈비, 병천순대 등 향토음식에도 푹 빠졌다. 인삼 홍삼 탐구와 한약재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상한 연구만 한다고 뒷담화도 많이 들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는 생소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부처 공무원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막걸리 알코올 도수는 왜 6도여야 합니까. 복분자 같은 한약재는 왜 식품원료로 못 씁니까”라고 되물었다. 경제학 박사가 따지고 들어도 승률은 낮았다. 일부 공무원은 ‘또라이’ 취급을 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를 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30년을 그렇게 살았다. 대화를 해보면 왜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초대 농식품부 장관으로 지명했는지 알 수 있었다.

◆농업 규제와 ‘30년 전쟁’

지난달 22일 세종시 조치원 세종전통시장에 있는 ‘맛샘식당’에서 이 장관을 만났다. 시장 한쪽에 있는 소박한 순대국밥집이다. 식당과의 인연을 물으니 단골집에 대한 철학을 말했다. “병천순대는 원조가 조치원에서 시작됐다고 해요. 세종시 내려와서 알게 된 병천순대 전문점인데 국밥과 돼지 부속고기 맛도 좋아요. 주인 내외의 인정이 넘쳐서 자주 와요.”

토종 수제순대와 돼지 부속고기가 상에 오르자마자 미리 준비해온 ‘진도 홍주’를 꺼내놓았다. 첫맛이 강하고 쌉싸름했다. 전통주 얘기가 빠질 리 없다. “20여년 전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직후에 식품 연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땐 식품산업이란 개념도 없었습니다. 우연히 전통주를 접했는데 완전히 규제 덩어리였어요.”

당시 술은 제조 영업 판매 유통 등 온갖 규제에 묶여 있었다. 이 장관은 “막걸리 원료로 인삼 잣 등도 쓸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며 “주류를 산업으로 만들고, 농산물 소비도 촉진시키기 위해 발로 뛰었다”고 말했다.

복분자 술에도 그의 땀이 배어있다. 원래 복분자는 한약재로 분류돼 식품 원료로 쓸 수 없었다. “대개 규제를 푸는 일은 이익집단과 부딪히게 돼 있어요. 멱살이 잡히는 일도 많았지만 1999년 복분자를 식품 원료로 쓸 수 있도록 관철시켰습니다.” 현재 복분자는 어엿한 식품산업으로 발전해 연 3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처음엔 누구도 호응해주지 않았다. 한 번은 국회 전통주산업육성법에 대한 공청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다가 한 방청객으로부터 “당신 말대로 술 규제 다 풀면 국민 전부가 병들고 망한다”고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세청 주류 담당 과장이었어요. 대체로 20년간 그런 식이었죠. 누구 하나 박수 쳐주지 않고, 연구비 대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렇기에 결실도, 보람도 컸다. 주류를 둘러싼 규제는 하나둘씩 풀렸고, 전통주를 산업화하기 위한 전통주산업진흥법도 만들어졌다.

순대와 머리고기 접시가 조금씩 비어져 갔다. 서너 순배 돈 진도 홍주는 참석자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입소문이 나면서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이 ‘괴짜’ 박사를 찾기 시작했다. 한 번은 한 농민이 찾아와 곤충을 키우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곤충은 가축으로 분류되지 않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부당하다고 판단한 이 장관은 농식품부 담당자를 찾아가 “지렁이나 나비도 가축으로 인정해달라”고 설득했다. 몇 차례나 거절당하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뜻은 받아들여졌다. 현재 곤충은 2000억원이 넘는 산업으로 발전해 있다.

아직도 농업 분야에는 규제 완화 숙제가 한가득이라고 했다. 그는 “식품 가공 분야에는 아직도 풀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며 “농지 규제도 농가 소득을 높여주기 위해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업 규제와 싸운 30년…지렁이·나비도 가축으로 인정해달라 '투쟁'…지금은 2000억대 산업 됐죠"
◆농촌을 잘살게 해야 한다

이 장관은 진도 홍주에 이어 제주 고소리술을 꺼내들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농민들이 잘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평생 지니고 살았다고 했다. 어릴 적 경북 의성의 좁다란 논길에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부친을 따라다닐 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대학을 나와 신문기자를 하다가 농촌으로 돌아와 청춘을 바쳤어요. 20대에 마을 이장을 맡았고, 동네 농민들과 함께 벼 한 말, 보리 한 말씩 출자해서 조합을 처음으로 만들었죠. 소년 시절 조합 창고에서 쥐를 잡는 게 제 일이었죠. 부친은 나중에 새마을운동에 앞장서며 농촌 부흥을 꿈꿨어요. 1968년 농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새농민상을 받기도 했어요.”

그는 부친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농촌과 농업에 관심을 가졌다. 고등학교 시절 마을에 봉사활동을 온 영남대 학생들과 지내며 농민이 못 사는 이유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학금을 받고 영남대 축산경영학과를 가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대학에 입학해선 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야학 선생을 하기도 했다.

영남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농사를 지으러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농사일은 만만찮았다. “보리를 베어서 탈곡하는 데 우박이 와서 난리가 났죠. 이마가 깨지고 넘어지고 엉망이었죠. 결국 집에서 쫓겨났어요. 무엇을 해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농업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들어갔다가 여기까지 온 거죠.”

따끈한 술국이 나왔다. 돼지고기 냄새를 맛깔나는 장으로 눌러 걸쭉하게 끓여낸 것이었다. 알코올 40도짜리 독주와 잘 어울렸다.

그가 1980년 농촌경제연구원에 입사한 직후 부친이 쓰러졌다. 농업용 전기요금을 적용해야 할 농촌의 저온저장고에 산업용 요금을 적용하는 정부와 싸우다가 탈진한 것. 이 장관은 부친을 대신해 농림부에 선처를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미국으로 유학가기 직전에도 아버지는 농산물 가격 폭락 때문에 고심하다가 쓰러지셨죠. 참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유학 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죠. 하지만 미국 생활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영어를 잘 못해 고생도 많이 했지만 남들 7년 걸리는 박사과정을 4년 만에 통과했거든요. 아버지는 귀국한 지 1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와의 약속 지키겠다

이 장관이 농업 연구에 몸 바친 30여년 동안 정권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는 오랫동안 역대 정권들의 농정 방향을 지켜보면서 늘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고 했다. 어느 정권이든 돈 버는 농업과 수출농업만 외치다가 실제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 고령농들을 소외시켜 왔다는 것. “물론 돈 버는 농업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우리 농가 112만 중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입니다. 이런 분들이 광범위하게 있는데 돈 버는 농업하자고만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 장관은 그래서 ‘행복’과 ‘배려’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장관이 되자마자 5년간 장기계획을 세울 때도 배려와 소통 농정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담았다. 농업을 미래성장산업으로 키우는 동시에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고령농들도 꼭 챙기겠다는 것이다.

“우리 어르신들이 산업화 때 얼마나 기여하셨습니까. 이분들 여생을 넉넉하진 않더라도 지금보단 조금 더 편안하게 살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농촌 노인들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공동홈과 장날이면 들어서는 작은 목욕탕 등이 대표적인 농촌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들이다. 많은 예산이 필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공동홈과 작은 목욕탕에 대한 노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들녘경영체를 통해 농업 규모를 대형화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6차산업, 귀농·귀촌을 촉진해 농가 소득을 끌어올릴 계획이에요. 농촌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먹고살게 해드릴 거예요. 배려 농정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 장관은 준비해온 민속주가 다 떨어지자 ‘국민 술’인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이른바 ‘소폭’이 돌기 시작했다. 순대 안주도 맛있었지만 깍두기와 파김치도 빠르게 바닥을 드러냈다. 취기가 서서히 올라왔지만 서너 시간에 걸쳐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하던 이 장관의 표정은 조금 심각해지고 있었다.

그에게 농업과 농촌은 ‘아버지와의 약속’이라고 했다. 농촌 지도자로 한평생을 살아온 부친을 보며 이 장관의 인생 목적도 어느 순간 ‘농민들 잘살게 하는 것’이 됐다고 말했다. “힘든 농촌 얘기 나오면 남의 얘기 같지가 않아요. 아버지가 청춘을 바쳐서 농촌을 잘살게 하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제가 그 뜻을 물려받아서 꼭 그렇게 할 겁니다.”

“農心 제대로 알자”…틈날 때마다 농촌행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각별한 농촌 사랑으로 ‘도시의 농사꾼’으로 불린다. 2011년 농촌경제연구원장을 맡자마자 “농심을 알아야 한다”며 직원들을 설득, 연구원 내 잔디밭을 보리밭으로 바꾼 일화도 있다. 한 달에 몇 번씩은 꼭 농촌 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업 규제와 싸운 30년…지렁이·나비도 가축으로 인정해달라 '투쟁'…지금은 2000억대 산업 됐죠"
이동필 장관의 단골집 맛샘식당
테이블은 4개 뿐이지만…40년째 한자리 지킨 ‘속 꽉찬 순대’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농업 규제와 싸운 30년…지렁이·나비도 가축으로 인정해달라 '투쟁'…지금은 2000억대 산업 됐죠"
세종전통시장 안에 있는 맛샘식당은 토종 수제순대와 돼지 부속고기를 파는 곳이다. 주인 내외가 한자리에서 40여년간 운영해온 전통이 있는 집이다. 맛있는 순대와 부속고기를 싼 가격에 제공하자는 게 운영 방향. 테이블은 4개뿐이지만 예약을 하면 평소 주인 내외가 사용하는 방을 내주기도 한다. 지역 전통시장 특유의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메뉴는 단출하다. 식사로는 순대국밥(6000원)이 유일하다. 2000원을 추가하면 양이 두 배인 곱빼기로 먹을 수 있다. 직접 만든 고소한 순대와 10여 가지의 돼지 부속물이 풍부하게 들어가 허전한 속을 뜨끈하게 데워준다. 선지와 채소 등이 고루 들어간 수제순대는 식감이 좋고 잡내가 없다. 직접 담근 잘 익은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맛이 좋다. 술도 판다. 소주, 막걸리 각 3000원. 국물 안주로 좋은 모둠 술국은 8000원이다. 국물 대신 순대와 고기 안주가 필요하면 모둠 안주가 제격이다. 순대와 여러 부속고기가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044)862-1435

조진형/고은이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