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GM·보쉬에 늘 존재했던 '에반젤리스트'
시장 주도권 확보에 가장 중요한 건 표준 확립 또는 새로운 시장 창출을 통한 시장 선점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테크놀로지 에반젤리스트가 존재한다. 이들은 판매하려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전도사 역할을 한다. 테크놀로지 에반젤리스트의 시초는 마이크 보이치(Mike Boich)다. 마이크 보이치는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며 매킨토시의 성공에 기여했다. 짐 플래먼든(Jim Plamondon)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플랫폼 기술을 업계 표준으로 확립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고 실행했다. 그의 노력은 MS 윈도 OS의 시장 지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에반젤리스트 활동이 정보기술(IT) 업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업계 표준을 제시하거나 시장 지배력을 공고하게 하는 활동은 어느 산업에서나 필수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 보쉬의 ABS 사례

자동차 업계에서 대표적인 에반젤리스트 활동 사례는 보쉬의 ABS(Antilock Brake System)다.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제동장치를 기존의 기술이 아닌 새로운 기술에 의지하고 맡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변화다. 그러나 보쉬는 다년간의 시험 결과 및 공인된 시험기관 데이터를 활용해 ABS가 운전자 안전에 절대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설득 활동 결과 ABS가 고급 승용차에 도입되자 점차 시장의 표준시스템으로 정착됐다.

● GM의 온스타(OnStar) 사례

GM의 자회사로 1995년 설립된 온스타는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텔레매틱스 서비스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 온스타는 기업과 소비자가 지갑을 열어 추가적인 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공을 들였다. 우선 모회사인 GM에는 고객관계관리 효과를 통해 더 많은 차량을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소구했다. 또 보험회사인 GMAC Insurance에는 사고 차량 보상금액 절감 효과와 차량 도난으로부터 발생하는 비용 손실 절감 효과를 적극 알렸다. 온스타는 점진적으로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타 양산차 업체로 확대했고 점차 가입자 기반을 넓힐 수 있었다.

● 다빈치(da Vinci) 수술 로봇 사례

환자의 생사가 걸려 있는 수술실에서 로봇을 활용해 수술을 진행하는 데는 대단한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로봇을 활용한 새로운 수술 방식에 대한 저항의 장벽을 생각해 보면 에반젤리스트 활동이 얼마나 중요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은 수술 로봇의 유효성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FDA가 수술 로봇의 활용을 승인할 경우 신의료기술 도입으로 공공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풍부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극 소구했다.

그리고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의 PPL 광고 등을 통해 환자들에게 직접 수술 로봇에 대한 개념을 노출시키면서 환자 본인들이 직접 의사에게 로봇 수술을 요청하는 단계까지 이끌었다. 병원들 역시 첨단 이미지 강화 차원에서 로봇 수술을 도입하기도 했다. 수술 로봇시장은 이렇게 확산됐다.

성공적인 에반젤리스트 활동을 위해서는…

● 추상적인 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 설정

에반젤리스트 활동은 다른 활동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다.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에반젤리스트 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경영진과 에반젤리스트 활동을 수행하는 해당 조직 간의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

● 기술과 시장을 아는 인재 확보

에반젤리스트 조직을 역량 있는 전문가들로 채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는 실제 역량이 뛰어난 현업 전문가들이나 깊이 있는 지식을 보유한 대중을 상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

에반젤리스트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에반젤리스트 본인들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신념을 갖고 있다는 필요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들의 활동은 공허하게 되기 쉽고 곧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박종석 < 책임연구원 jong.park@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