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사업 종잣돈 마련
구청 공무원 사표냈지만 돈 없어 신입사원 전형료·교육훈련비 받아
3200위안을 여행사업 종잣돈으로
13년 만에 中 여행업계 대부로…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 벤치마킹
전세기 사업하며 민간항공사 꿈 키워
항공권 '99시리즈' 대히트
매월 9, 19일 9위안짜리 폭탄 세일…이코노미로 좌석 통일·기내식 없애
한·일 취항하며 공격 행보
![](https://img.hankyung.com/photo/201411/AA.9254764.1.jpg)
세계에서 가장 싼 항공권으로 유명한 춘추항공을 이끌고 있는 왕정화(王正華) 회장의 목표다. 말단 공무원에서 중국 저가항공사(LCC)의 선구자로 탈바꿈하기까지 그는 지난 30여년간 숱한 화제를 뿌리며 중국 여행산업을 선도해왔다. 시장 평균 가격보다 최소 30% 저렴한 가격에 항공권을 내놓는다는 그의 초저가 전략은 이제 더는 중국 시장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왕 회장의 ‘99위안(약 1만7000원) 항공권 신화’가 춘추항공이 본격적으로 진출을 시작한 일본과 한국 시장에서도 성공할지에 대해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구청 공무원에서 여행업계의 대부로
중국 상하이시(市) 구청의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왕 회장이 사업가로 변신을 결심한 것은 38세였던 1981년이다. 그는 “매일 틀에 박힌 일만 반복해야 하는 공무원의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그가 선택한 사업 분야는 여행업.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경제와 정부가 밀고 있던 개혁개방 정책으로 인해 중국 내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이던 그에게 사업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기발한 방법으로 이를 극복했다. 왕 회장이 여행사 직원 모집 공고를 내자 40명 모집에 1600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들에게 1위안씩 전형료를 받고 최종 합격자에게 40위안씩 교육훈련비를 받아 3200위안의 종잣돈을 마련했다.
그는 이 돈을 가지고 상하이 중산(中山)공원 옆 2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춘추국제여행사를 창업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개혁개방 바람을 타고 여행 수요는 폭증했고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춘추국제여행사는 1994년 중국 전역에 2000여개의 지점을 가진 업계 1위 자리에 올랐다. 구청 공무원이 13년 만에 중국 여행업계의 대부가 되는 순간이었다.
왕 회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국영 기업에만 허용됐던 항공업 진출을 꿈꾸기 시작했다. 여행사업과 항공사업의 결합은 많은 시너지를 만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저가 항공사의 효시로 통하는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경영 이념과 방식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3년간의 연구 끝에 1997년 춘추국제여행사는 항공사들과 제휴를 맺고 전세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7년간 그가 3만여회에 걸쳐 중국 전역의 유명 관광지로 띄운 전세기의 평균 탑승률은 99%에 달했다.
2004년 1월 관계 당국인 민항총국이 대형 여행사 가운데 한 곳에 민영 항공사 설립 허가를 내준다는 소식이 들리자 왕 회장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전세기 사업을 하면서 꾸준히 민항총국에 영업 실적을 보고했던 춘추여행사의 놀라운 탑승률은 심사자들에게 인정받았고, 그해 5월 민항총국은 중국 최초의 저가 항공사인 춘추항공의 설립을 허가했다.
초저가 전략으로 대박 행진
항공사업에서 왕 회장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저가 전략이다. 당시 대형 항공사들이 가격 인상 러시에 나선 것과 반대로 ‘역발상 전략’으로 승부를 건 것이다. 왕 회장은 2005년 7월 상하이~옌타이노선에 첫 저가 항공기를 띄웠다. 168명의 탑승객 가운데 13명에게 199위안으로 탑승권을 제공했다. 일반 항공기 요금보다 75%나 싼 가격이었다. 2006년 11월 춘추항공은 깜짝 놀랄 만한 발표를 한다. 상하이~지난 노선의 왕복 항공권을 400장 한정으로 단돈 1위안(한화 약 120원)에 내놓은 것이다. 폭탄 세일로 순식간에 업계와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지방정부 당국에선 불공정 거래가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하지만 왕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비수기에 가격을 내리는 것은 항공사 공통의 영업 방식이며 큰 폭의 가격 인하도 춘추항공이 처음은 아니라는 논리로 대응했다. 춘추항공은 실제로 티켓 가격을 99위안, 199위안, 299위안, 399위안 등으로 책정, ‘99 시리즈’ 상품으로 대히트를 쳤다. 춘추항공은 지금도 매월 9일과 19일 오전 10시에 인터넷을 통해 9위안짜리 ‘폭탄 세일’을 하고 있다.
저렴한 항공권을 제공하기 위해 왕 회장은 과감한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좌석은 이코노미급으로 통일했고 항공권 가격에 포함됐던 음식 비용도 없앴다. 승객에게 제공하는 음식은 생수 1병이 전부다. 항공권 판매도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이용해 비용을 대폭 낮췄다. 유류비 절감을 위해 안전상 문제가 없는 범위에서 공기 저항이 적은 고공비행을 시행했다. 노력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적자를 기록한 2005년을 제외하고는 매해 흑자 행진을 이어간 것. 경제위기로 인해 항공업계가 극심한 불황을 겪은 2008년에도 춘추항공은 310만달러 규모의 순익을 올렸다.
한·중·일 잇는 국제 항공사로 발돋움
중국 내 저가항공 시장을 평정한 왕 회장이 눈을 돌리고 있는 곳은 일본과 한국 항공 시장이다. 춘추항공은 2010년 상하이~이바라키현 취항을 시작으로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왕 회장은 효율적인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해 일본 춘추항공을 설립했다. 일본 춘추항공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노선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국내선인 나리타~사가, 나리타~다카마쓰, 나리타~히로시마의 3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시장 공략도 공격적이다. 춘추항공은 지난 9월 인천~상하이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6명의 한국인 조종사도 채용했다. 춘추항공이 제시한 인천~상하이 구간의 편도 항공권 가격은 99위안(약 1만7000원). 왕복으로 끊을 경우 세금과 유류할증료를 더해도 1429위안(약 24만원)에 불과하다. 40만원대인 기존 항공사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왕 회장은 “인천공항은 춘추항공의 모항인 상하이 푸둥공항과 가장 가까운 거리의 국제공항”이라며 “이번 취항으로 인해 한·중·일 3국을 잇는 항공 네트워크를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