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자동차 연비 전쟁
과거 전자식 수정시계는 혁신 그 자체였다. 1년에 오차가 불과 몇 초였다. 태엽시계와 비교가 무의미했다. 지금 원자시계는 300만년에 오차가 1초다. 지난 2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세계 세 번째로 개발한 광격자시계는 1억년에 1초 오차다. 1초에 518조1958억3659만865번을 진동한다는 이터븀 원자를 이용한 표준시계다. 0.001초 찰나까지 찍는 마당에 왜 이런 시계를 만들까.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의 위치정보 파악에 필요한 기술이라고 한다. 극마이크로 기술로 무한 우주공간을 측정한다니, 극과 극은 그렇게도 통한다.

시계가 기계공업에서 디자인산업, 다시 초정밀산업으로 변한 것처럼 자동차산업도 변신 중이다. 빠른 교통수단에서 한동안 안전 경쟁이 이슈가 되더니 이젠 연비전쟁이다. 리터카 선두다툼은 이미 시작됐다. 1L로 100㎞를 가는 꿈의 차도 머지않았다. 가솔린·디젤형의 터보 엔진도 나오고 10단 변속기까지 개발된다고 한다. 푸조 등이 2L로 100㎞ 가는 콘셉트카까지는 내놓았다. 아직은 차값이 문제다.

소음과 진동 때문에 고급 승용차에는 부적격이라던 디젤 엔진도 진화를 거듭한 끝에 다시 각광받는다. BMW·벤츠가 국내에서 약진한 것도 디젤차의 높은 연비 때문이다. 당장 찻값보다 유지비가 관건인 시대다. 최근 유가가 내림세라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비싼 하이브리드 모델이 꾸준히 인기인 것도 월등한 연비 때문이다. 엔진, 소재, 제동장치 등으로 연비 높이기에 자동차업계의 사활이 걸렸다.

사실 차메이커들이 제시하는 공인연비는 실감연비와는 거리가 있었다. 기상청 공식기온만큼이나 체감 수치와 차이가 난다. 현대·기아차가 2012년의 연비 논란 끝에 미국에서 1억달러의 벌금을 맞았던 걸 보면 그래도 차 성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임은 분명하다. 한국은 아스팔트가 기준이지만, 미국은 콘크리트 도로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공인연비와 실제 연비의 차이가 더 벌어진다고 한다. 배출가스와 함께 검증해 연비심사도 더 엄하다. 현대·기아차의 높아진 시장점유율에 대한 견제까지 깔렸다니 단순히 연비 차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연비논쟁은 국내서도 계속돼 왔다. 다만 국토부와 산업부가 각기 다른 법에 따라 별도의 측정기관에서 검증해 혼선과 논쟁을 유도한 측면도 있다.

이래저래 현대차로서는 연비에서 퀀텀점프를 못 하면 세계시장에서 버티기 어렵게 됐다. 2020년까지 25% 개선한다고 정몽구 회장이 나선 배경이다. 디자인이나 안전은 좋아졌지만 연비는 게걸음이란 평을 들어온 한국차가 고비를 돌파하길 기대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