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S경영혁신 좌담회 "불황일수록 고객만족 더 강화해야…빅데이터로 고객 니즈 파악을"
올해는 한국에 고객중심 경영혁신이 뿌리를 내린 지 20년 되는 해다. 1992년부터 시작된 KCSI(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는 1994년부터 기업별 결과를 발표, 산업계 및 일반 국민의 큰 관심을 이끌어냈다. 삼성그룹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계열사의 고객만족도 조사, ‘질(質)경영’을 뒷받침하는 핵심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날 좌담회에는 고객만족경영학회장인 박내회 교수(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장), 허태학 CS경영위원회 위원장(전 에버랜드, 호텔신라, 삼성석유화학 사장), 종합 경영컨설팅회사인 KMAC(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김종립 사장이 참여했다.

▷사회자=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이 전파된 지 20년이 넘었다. 이에 대한 소회와 국내 고객만족경영의 특징이 궁금하다.

▷허태학 위원장=국내 산업에서 고객만족경영을 도입한 초기에는 고객이 표출한 불만에 대해 단순 대응하는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고객만족=친절’이라는 인식 아래 인적 응대와 시설 개선에 치중해왔다. 하지만 가시적이고 표면적인 개선만으로는 고객만족경영 근본적 수준 향상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각 변화는 에버랜드, 호텔신라와 같은 B2C기업뿐 아니라 삼성석유화학 같은 B2B기업에도 전파돼 각 산업 특성에 맞는 고객만족경영 기법을 구축하게 됐다. 제조업도 초기에는 애프터서비스(AS) 대응 등 불만처리 대응에 집중했지만 곧 고객만족은 품질경영(QM)과 직결된다는 사고를 재확립, 대응해 나갔다.

▷박내회 교수=고객만족경영은 고객중심의 혁신활동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획득하는 경영을 말한다. 이는 기업의 수익창출과 영속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이다. 국내 시장은 생산자 위주에서 구매자 위주로 돌아서면서 ‘고객’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고객의 선택이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면서 고객만족을 통한 차별화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1970년대 말 미국에서 시작된 기업 경쟁력 제고 운동, 1980년대 말 일본의 고객만족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발한 활동이 있었는데, 이런 움직임에 대기업들이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 국내 고객만족경영의 시초가 됐다.

▷김종립 사장=벌써 20년이 넘었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1990년대 초반 KCSI(한국산업의 고객만족도) 조사, 고객만족경영대상 등을 기획하고 발표해 산업 전반에 고객만족경영을 전파하기 위해 시도했던 여러 노력이 기억난다. 그 당시만 해도 고객만족에 대한 개념조차 전무했던 터라 실질적 필요성을 깨닫는 기업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많은 관심도 받았지만 동시에 저항도 굉장히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진단평가 제도나 콘퍼런스, 세미나를 통해 국내 시장에 고객만족과 관련된 혁신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해 온 결과 소비자와 기업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현재 수준에 이르렀다.

▷사회자=고객만족경영 도입으로 거둔 성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허태학 위원장=고객만족경영은 그 당시까지 만연했던 양적·외형적 성장을 지양하고 질적·내적 성장을 추구하는 경영의 시발점이 됐다. 과거 기업들의 경영 과정이 공급자 중심이 아니었는지를 되돌아본 것이다. 결국 고객이 선택해주지 않으면 망할 수도 있다는 마인드를 갖게 돼 더욱 고객지향적 혁신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이후 고객만족경영의 새로운 방법으로 6시그마경영, 지식경영, 디자인경영 등이 등장했는데 그 기반에는 항상 고객중심의 사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김종립 사장=각 기업은 고객중심경영을 고객 접점의 구호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경영 철학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 생산, 판매, 마케팅과 내부직원 및 협력업체의 만족까지 포함하는 전사적이고 총체적인 고객만족경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점차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경영이 가능해졌고, 불량이 줄어들었으며 만족도는 높아졌다. 민간 기업의 혁신 사례는 공공 부문에도 전파돼 행정 부문의 고객 만족도 수준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 사회 전반에서 고객만족도가 올라가면 국민 삶의 질도 올라갈 것이다.

▷박내회 교수=학계에서는 고객만족경영과 기업 성과의 연계성을 꾸준히 연구했다. 20년 이상 진행한 KCSI 조사 결과를 보면 고객만족도가 높은 기업의 주가는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안정성을 나타내고 있다. 고객 만족도가 높은 기업은 주가의 급등락을 겪지 않았다. 매출액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자=저성장이 장기화하면서 소비심리도 위축돼 있다. 각 기업은 성장 한계 돌파를 위해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고객만족경영이 위기 탈출과 지속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허태학 위원장=저성장기일수록 고객만족은 더 강조돼야 한다. 불황이라고 해서 고객의 기대 수준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은 돈을 쓰더라도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기대는 호황기보다 높다. 기업을 평가하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평가하는 고객의 기준도 더 까다로워진다는 뜻이다.

▷박내회 교수=경기침체기에는 고객이 지갑을 닫게 되고 사소한 지출에도 신중을 기한다. 소비를 줄이게 되면 직접 소비 경험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만족유무에 따라 고객은 간접 경험을 하는 성향을 보인다. 직접 사용한 고객들의 추천은 기존 고객 이탈을 막고 신규 고객을 유입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만약 불황기라고 회사 차원에서 지나치게 이익 중심의 경영을 펼치고, 고객만족을 소홀히 하다 보면 위기에 놓이기 쉽다.

▷김종립 사장=고객만족경영이 한참 전파되던 90년대 후반, 우리 경제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이라는 먹구름을 만났다. 기업들은 위기의 파고를 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이런 시기를 지나면서 기업들은 고객의 중요성을 더 깊이 체감하게 됐다. IMF 당시 고객 지향적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 기업들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반면, 그렇지 못한 기업은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저성장기도 각 기업의 옥석이 가려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사회자=이제 고객만족경영은 기업의 선택요소가 아닌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고객만족도를 더 높이기 위해 기업은 어떠한 방향과 목표를 설정해야 하나.

▷박내회 교수=‘프로슈머(Prosumer)’라는 용어가 있다. 소비자가 제품의 생산이나 유통 단계에까지 적극 참여해 ‘생산자적 소비자’로 변한 것을 뜻한다. 본격적인 소비자 주권시대, 즉 프로슈머의 시대가 되면서 고객은 기업 활동의 전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기업 성장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처럼 기업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유통하고 홍보·판매하는 시대는 끝났다. 고객의 의견을 더 적극 수용하고, 고객을 참여시키고, 기업 활동에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성과를 좌우할 것이다.

▷허태학 위원장=고객만족경영의 가장 기본은 ‘고객의 소리’다. 기업 내외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고객의 소리를 기업 내부로 유입시키고 이들이 주는 정보를 유형별로 분석함으로써 기업은 고객 만족을 위한 최적화된 틀을 만들 수 있다. 최근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빅 데이터’ 활용 관점에서 볼 때, 기업으로 유입되는 고객의 소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로그 등 각종 웹에서 노출되는 고객의 입소문까지 포함한다. 이를 수집해 분석하는 활동이 경영의 범위에 포함되면서 빅데이터의 활용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결국 고객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많이 확보하느냐가 기업 생존의 핵심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고객’들이 들려주는 ‘소리’를 제대로 수집해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생존을 담보하는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김종립 사장=고객의 니즈는 늘 변화한다. 기업에 대한 고객의 기대수준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경쟁 기업의 고객 만족도도 올라가고 있다. 기업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고객의 소리와 니즈에 집중해야 한다. 리더부터 접점 직원까지, 연구개발(R&D)에서 AS까지 총체적 시각으로 전사의 모든 역량을 고객 만족에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또 외부고객인 소비자만을 만족시켜서는 지속 성장을 할 수 없다.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직원, 협력사, 사회 등 광의의 고객을 만족시키는 총체적 고객만족경영이 시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 니즈에 근거한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상품과 개발 프로세스 및 기업문화 조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