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융복합 패러다임 거스르는 金·産분리
한국의 금융산업은 지난 10년간 뒷걸음질 쳤다. ‘메가뱅크’ ‘한국의 골드만삭스’ ‘동북아 금융허브’는 이제 입에 올리는 것조차 면구스럽게 됐다. 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금융시장 성숙도’에서 한국은 세계 80위로 추락했다.

구조를 보면 더 암울하다. 2004년 8조8000억원이던 은행권 전체의 순이익은 지난해 4조5000억원으로 9년 만에 반토막 났다. 은행권의 대손충당금은 2007년 4조5000억원에서 2013년 11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주택담보대출 등 손쉬운 영업에 집중했음에도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영업활동을 벌인 것도 아니다. 국내 은행들의 총자산 대비 해외자산 비중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4.3%에 불과하다. 레드오션에서 출혈경쟁을 벌이다 보니 수익성이 낮은 것은 당연하다. 총자산이익률은 지난해 0.37%로 글로벌 50대 은행의 0.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상에는 본질이 있기 마련이다. 낮은 경쟁력은 금융회사의 ‘주인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현 은행법은 동일인이 의결권 있는 주식의 10% 이상을 소유할 수 없도록 ‘동일인 소유한도’를 규제하고 있다. 산업자본의 소유제한은 더 엄격하다. 공정거래법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비금융주력자’는 4%를 초과할 수 없다. 금산분리의 취지는 산업자본의 ‘사(私)금고화’를 막겠다는 것이다. 산업자본은 ‘맹수’에 금융자본은 ‘초식동물’에 비유되면서 금산분리는 그동안 ‘성역화’됐다.

은행의 사금고화는 자산운영 규제를 통해 막는 것이 정도다. 현행법은 동일인 대출한도를 자기자본의 25%까지 허용해 오히려 관대하다. 소유규제를 엄격히 하고 운영규제를 느슨하게 한 것은 금융사를 관치금융의 앞마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배구조는 종국적으로는 소유 구조에 기초한다. 주인 부재 기업의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최근 국민은행 사태의 뿌리도 주인 부재인 것이다. 책임경영과 효율경영을 위해 금산분리는 재고돼야 한다.

또 금산분리는 융복합시대에 더 이상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 최근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정보기술과 금융거래의 접합면’이 늘고 있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해 금산분리 완화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발언은 맞는 말이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면 대기업은 차치하고 정보기술(IT), 금융 융합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IT 기반 기업의 온라인 전문은행 시장 진입을 막게 된다. 일본은 일찍이 2000년에 비금융사가 은행 지분을 20% 이상 소유할 수 있도록 빗장을 풀어 제조업 및 통신·인터넷 기반의 인터넷전문은행 출현을 촉진했다.

금융과 IT의 융합을 통한 비금융기업의 금융산업 진출은 전통 시장을 재조합할 수 있다. 미국 전자결제협회에 따르면 2013년 전 세계에서 신용카드 사기 피해액은 12조원이고, 이 중 47%가 미국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카드사가 완벽한 보안을 제공하는 모바일 제조사와 손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역으로 모바일 제조사가 카드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인 청년층 중 40%가 페이팔, 애플 등 비금융사가 은행업에 진출할 경우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모바일 제조사와 전자상거래업자 간의 합종연횡도 가능하다. 애플페이가 중국에서 서비스되려면 중국의 은행과 신용카드사 인가를 취득해야 한다. 협상이 쉽지 않지만 다른 길이 있다. 애플과 알리바바의 제휴가 그것이다. 알리바바는 민간은행 설립을 인가받았고, 내년 3월 개점 예정이다. 애플페이는 알리바바를 통해 중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알리바바는 애플의 플랫폼을 통해 알리페이 계좌를 늘릴 수 있다.

‘금융+IT 빅뱅’이라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금산분리라는 장벽을 순차적으로 걷어내야 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명분으로 작년에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한도를 9%에서 4%로 강화했다. 재벌의 은행 사금고화라는 허수아비를 공격하느라 혹여 모바일 혁명의 함의를 놓친 것은 아닌지.

조동근 <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