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4월 16일, 그 후
2014년 4월16일, 경기도지사 경선 TV토론회를 위해 방송국으로 향하던 중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차를 진도로 돌렸다. 팽목항에는 거대한 슬픔만이 어두운 바다를 짓누르고 있었다. 많은 정치인이 현장을 방문했다.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 해보려는 정치인, 쏟아지는 물병 세례에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어머니의 절규가 심장을 후벼 팠다. “내 새끼는 부모 잘못 만나 죽었어. 국회의원, 장관의 자식이 저기 있었다면 저렇게 가라앉게 뒀겠어!”

죄인 된 심정으로 열이틀을 내리 진도에 있었다. 항구 진입로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통신 중계기를 설치했다. 지친 잠수사들에게 부식을 배달하고 체육관에는 전광판을 설치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마지막 길을 안내하기 위해 상조회사를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참담함은 금할 수가 없었다.

국회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함께 있던 실종 학생의 아버지에게 문자가 왔다. “의원님, 우리 아이 찾았어요 지금 배 타고 오고 있대요….” 싸늘한 주검일지언정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린 부모의 마음에 내 가슴도 미어졌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우리는 수많은 재난을 겪어 왔다. 그러나 세월호가 이처럼 더욱 참담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기업의 탐욕과 관리자들의 무책임, 그리고 정부의 무능함과 정치권의 비열함 등 우리 사회의 무너진 가치들이 세월호를 통해 낱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직보다 이윤을, 생명보다 이익을, 나눔보다 경쟁을 미덕으로 삼아온 결과다. 우리 사회의 민낯은 부끄러움을 넘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정치인들의 잘못이다. 이 못난 정치인들은 세월호특별법을 논하면서도 속으로는 정략만을 계산했다.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라는 본질은 잊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아 왔다. 그 결과 참사 이후 206일이 흐른 지난 금요일에야 세월호특별법이 힘겹게 국회를 통과했다. 세월호의 참담함은 대한민국의 참담함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참담함은 한국 정치의 참담함이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라.’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국민들의 뜻은 명쾌하다. 이제 이 뜻을 실현하기 위한 한국 정치의 변화가 필요하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 그 정치의 기본만이 4월16일 이전과는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정병국 < 새누리당 의원 withb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