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예술의 가치
지난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온 국민이 슬픔과 비탄에 빠졌다. 문화예술계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발레단도 아픔을 느끼며 침묵으로 추모에 동참했다. 침묵과 슬픔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하고 있는 공연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없을까’라는 고민도 깊어졌다.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시 일어서자는 분위기가 일 때쯤 서울발레시어터에 지방공연 기회가 생겼다. 조심스러웠지만 내내 연습실에서만 실력을 갈고닦던 단원들이 오랜만에 올라설 무대가 생겼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오랜 시간 고민하던 답을 찾았다.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창작발레 작품을 준비해 충남 예산군 문예회관을 찾았다.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가라앉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우려와 달리 모든 좌석의 티켓은 물론 입석까지 매진됐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1회만 공연한다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감사한 마음에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로비에 나가 관객을 맞았다. 엄마 아빠와 함께 공연장을 찾아온 아이들, 아이들과 함께 공연장에 입장하는 어른들의 밝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연을 보는 동안에도 관객은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매 순간 집중했다. 오랜 시간 무거운 분위기에 지쳤을 사람들에게 웃음과 함께 ‘힐링’을 선물한 듯해 기뻤다.

공연예술은 단순히 보는 즐거움 외에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음악과 표정, 몸짓 등으로 관객과 내면의 깊은 감정을 공유한다. 마음을 나누며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지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치유하는 역할도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예술의 가치 실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의 배우와 관객이 교감하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예술만이 가진 힘이다.

나는 스스로 작은 약속을 하고 실천하려 한다. 많은 사람을 만나 더 좋은 공연으로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더 좋은 예술로 소통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미약하나마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김인희 <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aram586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