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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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법무법인(로펌) 세종의 강신섭 대표변호사(사법연수원 13기)는 조직 문화가 로펌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사건을 맡거나 세종이 나아갈 방향을 정할 때 구성원의 의견을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판사 출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주적 합의점을 찾는 과정을 중시한다.

강 대표는 “대표나 일부 파트너 등 소수의 사람이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게 세종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바탕으로 고객을 만족시키는 내부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말 세종 대표를 맡은 이후 이런 원칙에 입각한 경영을 실천해왔다. 경영진 누구든 독단적으로 로펌을 운영한다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신입 변호사나 직원을 뽑을 때도 경영진의 아들, 며느리 등 친인척을 채용할 수 없도록 했다. 강 대표뿐 아니라 세종의 모든 구성원이 투명 경영이 로펌의 성과를 좌우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로펌은 사유물이 아니다’는 가치가 조직 깊숙이 녹아 있다.

강 대표는 “공정하게 인재를 채용하는 게 바로 로펌의 사회적 책임이고 젊고 능력 있는 변호사들에 대한 배려”라고 말했다. 세종은 지난달 대형 로펌 중 ‘음서 채용(고려, 조선시대에 공신이나 전·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제도)’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해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법조계는 공정과 정의의 기치를 내건 세종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복잡다기한 문제를 접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변호사들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해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강 대표의 경영 철학이다. 과거 미국 로펌 크라바스에 파견나갔을 때 ‘크라바스 문화는 없다’란 문장이 회사에 적힌 것을 보고 크게 감화받았다고 했다. 이는 모든 구성원의 개성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구성원 개인의 총합이 곧 크라바스 문화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세종도 변호사의 개성, 팀의 개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최상의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책 읽으며 열린 경영 내세워

세종 변호사들은 강 대표 체제의 강점으로 ‘열린 경영’을 꼽는다. 법원 검찰 정부 대기업 등의 우수 인재를 세종으로 데려와 내부에서 차별 없이 올라갈 수 있는 풍토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능력만 있으면 대우나 승진에서 차별이 없다”며 “나도 외부에서 와서 대표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김홍일 전 부산고검장을 영입한 것을 비롯해 김경호 전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윤종수 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를 스카우트했다. 김 전 고검장은 부산저축은행 로비 사건 등 기업·금융·부패범죄 전문가고, 윤 전 부장은 정보법학회에서 활동하는 등 개인정보 분야에서 유명한 변호사다. 올해도 우수 인재를 계속 영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서기관 출신인 김동욱 변호사와 SK텔레콤 법무실장 출신인 황석진 미국 변호사를 데려왔다. 건설, 중재 등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인 신웅식 변호사도 세종에 합류했다.

유연한 사고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 특히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산업혁명기부터 지식혁명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세상에 대한 인식을 넓힐 수 있어서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같은 책은 우리 사회가 변화하는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피터 드러커의 책 덕분에 세계 자본주의 사회의 흐름을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조금씩 읽고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미국 중심의 경제학에서 탈피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 인류학 등 인접 학문 성과를 인용한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총 매출과 파트너 1인당 매출 증가

세종은 2012년 1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1350억원)보다 마이너스 성장했다. 구원투수로 강 대표가 취임하자 세종의 매출은 지난해 1452억원으로 증가했다. 작년에 파트너 변호사 1인당 수입도 18억2000만원 정도로 국내 최정상급 수준에 올랐다.

강 대표의 목표는 뚜렷하다. 세종을 국내 6대 대형 로펌 중 하나가 아니라 독보적인 최고 로펌으로 만들겠다는 것. 세계적 법률시장 평가기관인 ‘체임버스 앤드 파트너스’는 올해의 한국 로펌상 수상 업체로 세종을 선정했다. 강 대표는 “인수합병(M&A) 금융 송무에서는 항상 1위”라며 “조세, 노동,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 2~3년이면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세종의 내부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 법률 자문이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전담팀을 만들었다. 일종의 기동팀으로 변호사 등 전문가가 대거 투입돼 최적의 해법을 찾는 방식이다. 세종은 불공정거래팀과 노동팀(통상임금전담팀), 일본팀, 자산관리팀, 프로젝트&에너지팀 등을 꾸렸다. 이는 국내외 기업 자문을 대거 수임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법률 서비스 시장도 유망하다고 판단해 일본팀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변호사가 한 명 있고, 매년 한두 명씩 일본 로펌에 3~6개월 정도 연수 보내고 있다. 강 대표는 “일본은 무형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비용을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불공정거래팀도 최정예 멤버로 꾸렸다. 16년간 금융감독원에서 근무하다 대검찰청 금융정보분석팀장으로 일한 이재식 전문위원이 작년에 합류했다. 시세 조종 등 자본시장 불공정 거래 분야의 전문가인 김대식 변호사, 디지털 포렌식 분야의 최성진 변호사도 불공정거래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올해 시세 조종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셀트리온 측 변호를 맡아 사실상 무죄에 가까운 벌금형을 끌어냈다. 소위 부자 마케팅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자산관리팀도 성과를 내고 있다. 상속이나 증여에 따르는 제반 문제 등을 주요 은행, 증권사 법무팀과 함께 처리해준다.

○2017년 법률시장 개방 준비

강 대표의 좌우명은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이다. 기초부터 하나하나 다져서 자신이 못하면 후배들이 마저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경영 마인드도 그런 좌우명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의 예를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말로가 프랑스 파리의 도시 설계에 대해 수십년이 걸리는 계획을 발표하자 기자들이 언제 완성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는 “프랑스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며 “문화를 만드는 것이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고 답했다. 강 대표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세종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가 뚜렷하게 일어날 것으로 확신한다.

2017년 법률시장 개방도 이 같은 자세로 준비하고 있다. 유럽이 법률시장 개방을 맞아 일어났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영미 로펌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로펌들은 모두 자국 시장에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로펌도 서둘러 국내 시장에 대한 나름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해외 글로벌 로펌과 다양한 신뢰 관계를 구축해 함께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국내 법률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의 신뢰를 공고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 강신섭 대표 프로필

△1957년 출생 △서울대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1979년) △서울대 법과대학원 행정법 전공(1981년) △사법연수원 제13기 수료(1983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 등(1986~1996년) △대법원 재판연구관(1997년)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2001~2013년) △법무법인 세종 경영전담 대표 변호사(2013년~현재)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