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고마해라, 마이묵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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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우 증권부 차장 leebro2@hankyung.com
서울 여의도 KDB대우증권 앞마당에는 낯선 컨테이너가 1주일째 놓여 있다. 노조가 끌어다 놓은 숙소 겸 농성장이다. 벽면에는 낯익은 영화대사와 노조 특유의 격문(檄文)이 어지럽게 나붙어 있다. “우리가 마루타냐, 인사실험 그만해라” “주주 직원 ×무시하는 산은지주, 청와대와 사추위는 즉각 해체하라.” 문구는 희극적이고 거칠었지만, 겨냥한 조롱의 대상은 분명했다.
노조를 농성장으로 불러낸 것은 파행을 거듭한 사장 인선이다. 미궁에 빠진 지 넉 달째다. 한 직원은 “전임 사장이 물러난 이후 지금까지 루머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조원은 “민간 증권사 사장 임명에 왜 청와대가 거론되는지, 최대주주 산은금융지주는 뭘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연기 또 연기…배후설만 모락
지난 7월 말 김기범 사장이 돌연 사퇴할 때부터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산은지주는 과거 고섬이란 중국 회사를 상장시킨 뒤 발생한 손실을 책임지기 위해 김 사장이 사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김 사장 과실이냐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청와대와 가깝다는 모 인사를 사장에 앉히기 위한 밀어내기란 설이 파다하게 돌기도 했다.
하지만 사장 선임을 위한 9월 이사회는 뚜렷한 이유 없이 연기됐다. 청와대 관련설이 부담스러워 백지에서 다시 인사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전·현직 대우증권 인사 세 명이 최종 심사대상에 올랐다. ‘낙하산 없이 사장을 배출할 호기’라는 기대가 높았던 배경이다. 이런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지난달 30일 열리기로 했던 두 번째 이사회에 사장 선임 안건이 아예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다시 11월 말로 미뤄졌다. 이런 일은 44년 대우증권 역사상 처음이다.
사장추천위원회와 산은지주는 어쩐 일인지 또 침묵했다. ‘청와대가 다시 지시를 내렸다’ ‘내정된 후보와 관련한 비리 투서가 날아들었다’ 등의 소문이 다시 돌았다.
피해자만 양산하는 인사실패
침묵이 길어지는 사이, 애꿎은 피해자들만 늘어갔다. 미확인 루머에 시달린 후보 당사자들부터 상처를 입었다. 멀쩡한 후보가 횡령 범죄자가 되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비방 제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다가올 후폭풍을 생각하면 대우증권 임직원, 소액 주주, 거래고객도 이미 잠재적 피해자다. 누가 사장이 되든 심각한 후유증에 맞닥뜨릴 공산이 커졌다.
비난의 칼끝은 산은지주를 향하는 모양새다. “새로 뽑지도 못할 거면서 자르긴 왜 잘랐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질질 끌다 회사를 거덜내느니 차라리 낙하산을 보내라”는 일부 직원의 힐난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대우증권 사장 선임 과정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도 평했다. 그러든 말든 여전히 사추위와 산은지주는 묵묵부답이다.
대우증권 노조 위원장은 농성 직전 임직원에게 편지를 썼다. 요즘 술자리 화제인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로 시작된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의 아픈 해체를 딛고 혁신에 성공한 넥센과 선수사찰 의혹으로 표류하는 롯데의 모습에서 대우증권이 가야 할 분명한 미래를 읽습니다.” 이젠 누군가 답해야 할 차례다.
이관우 증권부 차장 leebro2@hankyung.com
노조를 농성장으로 불러낸 것은 파행을 거듭한 사장 인선이다. 미궁에 빠진 지 넉 달째다. 한 직원은 “전임 사장이 물러난 이후 지금까지 루머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조원은 “민간 증권사 사장 임명에 왜 청와대가 거론되는지, 최대주주 산은금융지주는 뭘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연기 또 연기…배후설만 모락
지난 7월 말 김기범 사장이 돌연 사퇴할 때부터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산은지주는 과거 고섬이란 중국 회사를 상장시킨 뒤 발생한 손실을 책임지기 위해 김 사장이 사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김 사장 과실이냐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청와대와 가깝다는 모 인사를 사장에 앉히기 위한 밀어내기란 설이 파다하게 돌기도 했다.
하지만 사장 선임을 위한 9월 이사회는 뚜렷한 이유 없이 연기됐다. 청와대 관련설이 부담스러워 백지에서 다시 인사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전·현직 대우증권 인사 세 명이 최종 심사대상에 올랐다. ‘낙하산 없이 사장을 배출할 호기’라는 기대가 높았던 배경이다. 이런 기대는 보기 좋게 깨졌다. 지난달 30일 열리기로 했던 두 번째 이사회에 사장 선임 안건이 아예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다시 11월 말로 미뤄졌다. 이런 일은 44년 대우증권 역사상 처음이다.
사장추천위원회와 산은지주는 어쩐 일인지 또 침묵했다. ‘청와대가 다시 지시를 내렸다’ ‘내정된 후보와 관련한 비리 투서가 날아들었다’ 등의 소문이 다시 돌았다.
피해자만 양산하는 인사실패
침묵이 길어지는 사이, 애꿎은 피해자들만 늘어갔다. 미확인 루머에 시달린 후보 당사자들부터 상처를 입었다. 멀쩡한 후보가 횡령 범죄자가 되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비방 제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다. 다가올 후폭풍을 생각하면 대우증권 임직원, 소액 주주, 거래고객도 이미 잠재적 피해자다. 누가 사장이 되든 심각한 후유증에 맞닥뜨릴 공산이 커졌다.
비난의 칼끝은 산은지주를 향하는 모양새다. “새로 뽑지도 못할 거면서 자르긴 왜 잘랐느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질질 끌다 회사를 거덜내느니 차라리 낙하산을 보내라”는 일부 직원의 힐난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대우증권 사장 선임 과정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도 평했다. 그러든 말든 여전히 사추위와 산은지주는 묵묵부답이다.
대우증권 노조 위원장은 농성 직전 임직원에게 편지를 썼다. 요즘 술자리 화제인 넥센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로 시작된 편지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의 아픈 해체를 딛고 혁신에 성공한 넥센과 선수사찰 의혹으로 표류하는 롯데의 모습에서 대우증권이 가야 할 분명한 미래를 읽습니다.” 이젠 누군가 답해야 할 차례다.
이관우 증권부 차장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