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과 회사 돈 구분 못하던 직원
6개월만에 은행원 기본 바로잡아
매년 뉴욕 찾아 새 트렌드 파악
캄보디아 최대 상업은행인 카나디아은행의 문병수 부행장은 이곳이 다섯 번째 직장이다. 그는 2002년 11월 뉴욕지점장을 끝으로 31년간 몸 담았던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을 떠났다. 무역회사 흥보실업과 대우전자부품의 후신인 파츠닉 사장을 거쳐 2005년부터 캄보디아에서 제2의 금융 인생을 살고 있다.
“첫날 고객이 맡긴 돈에 손을 대면 안 된다고 했더니 직원들이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하더군요.”
2005년 2월 캄보디아의 어드밴스드뱅크 오브 아시아(ABA) 행장 직무대행을 맡아 처음 출근한 날 그는 “과연 여기서 은행업이 가능할까”라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캄보디아에선 은행업 자체가 생소한 산업이었다. 개인은 물론 부자들도 고액의 현찰을 자기 집에 보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직원들도 예금과 회사 돈을 구분하지 못했다. 직원들에게 물건을 사오라고 시키면 자기 ‘수고비’를 얹어 영수증을 청구하는 게 관행이었다. 고객의 예금 정보를 떠들고 다니는 직원도 다반사였다.
그가 직원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택한 방법은 솔선수범이었다. 행장 직무대행으로 집행하는 모든 경비를 자기 지갑에서 내기로 한 것. 대신 회사 돈에 손을 대면 ‘잘린다’고 경고했다. 고객 정보를 흘린 직원은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 “이렇게 6개월 정도 하니 기본이 잡히더군요.”
그는 2년 뒤인 2007년 11월 지금의 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ABA은행을 정상화시킨 능력을 눈여겨본 카나디아은행 대주주가 그를 스카우트했다. 그가 실질적인 은행 경영을 맡은 2007년 4억5000만달러였던 예금은 지난해 말 14억달러로 늘었다. 그가 이곳으로 옮길 당시 캄보디아 전체 은행의 예금 규모였던 15억달러에 맞먹는 금액이다.
“2002년 임원 승진에 실패하면서 저를 키워준 은행을 떠나야 했지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습니다.”
금융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캄보디아에서 10년 가까이 은행산업을 키우면서 칠순을 앞둔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는 그는 “인생을 살다보면 기회는 언젠가 온다”며 “하지만 스스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매년 휴가 때면 뉴욕을 찾아 새로운 경영 트렌드와 금융 기법을 찾고 있다. 문 부행장은 “캄보디아의 사법연수원생은 영어와 프랑스어 강의를 들을 정도로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한국의 젊은이들도 국내에 머물지 말고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