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근로 32개 업종만 허용
기업 "해외로 나가란 소리냐"
노동계는 최근 이 같은 하도급 근로자의 원청 정규직화 투쟁을 전방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와 쌍용차, 한국GM 등 제조업 사내하도급을 중심으로 시작해 최근에는 삼성전자서비스, 씨앤앰,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서비스업체까지 하도급 갈등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법이 내놓은 현대차 사내하도급 판결은 이 같은 하도급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서울지법은 사내하도급 근로자 1247명에 대해 ‘적법한 사내하도급이 아니라 불법 파견에 해당하기 때문에 원청인 현대차 정규직 직원’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의 근거인 파견법은 경비·청소 등 32개 업종에서만 제한적으로 파견근로를 허용하며 제조업 등 다른 업종에서 파견근로를 쓰면 원청 직원으로 의제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경기 변동에 대처하기 위해 하도급을 활용한다. 하도급은 원칙적으로 원청이 하도급 근로자에게 직접 근로 지시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파견과 다르다.
그런데 서울지법은 이번 사건에서 현대차가 근로 지시를 하지 않기 위해 만든 ‘작업 표준서’를 오히려 근거로 삼아 파견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노동계는 이 판결을 근거로 “모든 사내하도급은 불법 파견”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산업계는 이 판결의 여파가 제조업 전반은 물론 서비스업 등 다른 업종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지법 판결 취지대로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원청 정직원으로 전환하면 연간 5조4169억원의 인건비 부담이 추가된다는 것이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파견근로가 극히 제한된 국내 법 체계에서 사내하도급까지 금지되면 기업들은 해외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제조업에서 촉발된 사내하도급 불법 파견 갈등은 하도급을 활용하는 다른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 도입 이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노조 조직률이 낮은 하청업체들을 집중 공략한 결과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TV업체 씨앤앰과 티브로드 하청 노조는 민주노총 주도로 지난해 3월 말 설립됐다. 노조 가입 인원은 씨앤앰이 대상자 1100여명 가운데 600여명, 티브로드는 1500여명 중 400여명이다.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노조 결성이 늘고 단체행동에 나서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노사분규도 급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노사분규 건수는 8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76% 늘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