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원은 도로 건설, B의원은 稅감면 법안 관철시키려 할 때
서로에게 찬성표 던지도록 합의해 일괄 통과시키는 '로그롤링'
상부상조냐 票買收냐 '논란'…정부 비대해지는 부작용도 커
자본주의 사회에 물건을 거래하는 상품시장이 있듯이 민주주의 사회에는 표(票)가 거래되는 ‘투표시장(vote market)’이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어떤 정치인이건 이 투표시장에서 각자의 이권을 위해 표를 거래하며 상부상조할 수 있다. 이런 ‘투표거래 행위’를 공공선택학에서는 ‘로그롤링’이라고 부른다.
벌채한 통나무(log)를 마을이나 공장으로 옮기기 위해 보조를 맞춰 굴리기(rolling)를 한 데서 유래된 용어다. 이권이 결부된 서로의 법안을 상호 협력해 통과시키는 ‘정치적 짬짜미’를 가리킨다.
로그롤링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하나의 법안에 대해 정파가 다른 의원들이 드러내놓고 힘을 모아주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중에 자신이 입안한 법률안에 대한 지원을 확약받는 것이다. 의회 내 각종 위원회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암묵적인 로그롤링도 있다. 여러 법안을 하나의 꾸러미로 엮어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법안에 대해 강한 추진 의사를 갖고 있는 의원들은 결국 꾸러미에 포함된 다른 법안들에 대해서도 찬성투표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은 일부 주가 빠진 주간(州間)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통과시키기 위해 타 법안과 꾸러미로 묶어 상정한 적이 있다. 하원의원들이 각자 소속된 주의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유도, 전체 고속도로망 건설에 대한 찬성표를 이끌어낸 것이다.
암묵적 로그롤링은 의원 개개인에게 많은 혜택을 안겨준다. 의원들은 각자 이권이 걸린 법안들을 하나로 꾸러미화해 통과 가능성을 높이는 반면 전체 꾸러미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있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자기 지역구의 이익을 감추고 대의(大義)를 위한 불가피한 ‘정치적 타협’의 결과였을 뿐이라고 변명하면 그만인 것이다.
암묵적 로그롤링의 결과 터무니없는 사업들이 법률안에 포함되기도 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의 부실은행 긴급구제 법안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미 의회에 처음 상정된 긴급구제 법안은 단 몇 쪽밖에 안되는 간단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의원들은 이 법안이 무조건 통과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지를 대가로 다른 요구사항을 덧붙일 수 있었다. 의원들 간에 여러 차례의 투표거래를 거친 후 이 긴급구제법안은 451쪽으로 늘어났고, 최초 법안 발의 목적과 무관한 지원책까지 포함됐다. 추가 지원책들로는 자동차·스포츠 경기장에 대한 세제혜택, 20년 전 엑슨발데즈사의 석유누출로 피해를 입은 어업 부문에 대한 세제혜택,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 모직물 생산자들에 대한 세제 감면, 럼주 산업에 대한 물품세 환급, 아동용 나무 화살 제조업자들에 대한 세제 혜택까지 있었다. 이들은 부실은행에 대한 구제조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여기에는 로비집단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했다.
로그롤링은 긍적적이며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 특정 지역 주민들에게는 관내 도로 건설 등 어느 한 사업으로부터 얻는 혜택이 당해 사업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그 사업이 마땅히 진행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지역의 새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다른 지역 주민들은 공사에 필요한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에 사업진척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사업 자체를 반대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투표거래는 ‘이롭다’고 할 수 있다.
9명의 투표자가 있고, 각자에게 1000원의 세금납부 수요가 발생하지만 1만5000원의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이 있다고 가정하자. 먼저 이 법안에 대해 8명이 반대하고 1명만 찬성한다면 총편익(1명이 얻는 1만5000원)이 총비용(8명의 세금 8000원)을 초과하더라도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에 반대한 8명이 자신이 선호하는 다른 유사한 법안으로부터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9명의 투표자는 투표거래를 통해 상대방의 법안(사업)을 지지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투표거래의 긍정적 측면이다.
그러나 로그롤링은 부정적 측면이 부각된다. 대개는 투명하지 못하고, 정치적 이익에 의해 지배되며, 대중에게 비용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로그롤링은 공공연한 부패, 즉 투표매수(投票買收)로 타락할 수 있다. 투표자들이 현금이나 특혜를 받고 자신의 표를 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수자들이 매수될 때 법안은 ‘일괄(一括) 법안(Omnibus Bill)’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일괄 법안들이 통과될 때마다 많은 사업이 새로 생겨나고, 그 결과 정부가 비대해진다.
이런 로그롤링은 어떻게 억제할 수 있을까. 단일 안건에 대해 모든 투표자를 상대로 투표(국민투표)를 한다면 로그롤링이 원천 차단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국민투표에 부칠 사안이 많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 실행이 어렵다. 상·하원으로 구성된 의회도 조금이나마 로그롤링을 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상·하 양원은 투표거래를 더욱 어렵게 하며, 투표 결과에 대한 예측도 불확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로그롤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미국 헌법은 이런 요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로그롤링은 여전히 미국 정치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하원에서 로그롤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 하원은 2년마다 선거를 치르며, 비교적 작은 지역구를 대표하기 때문에 하원 의원들은 항상 재선 압력에 직면해 있다. 의원 간의 끊임없는 합종연횡과 투표거래가 횡행하는 까닭이다. 로그롤링에 대한 지속적이고 효과 좋은 해독제는 정부 규모를 작게 하는 것이다.
정부 규모가 작아지면 로그롤링에 따른 잠재적 이익이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법률 입안 및 처리에 대한 시민들의 무관심과 무지도 타파해야 한다.
●로그롤링 폐해 막으려면…시민단체 예산 감시 중요, 美선 매년 '피그북' 발행
로그롤링은 대의(代議)민주주의 하에서 흔한 일이다. 미국 정가에서는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연방제인 미국의 의회 의원들은 각자 소속된 주나 선거구의 이익을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의원 자신의 개인 사업을 위해서도 로그롤링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당 정책은 종종 뒷전으로 밀리기도 한다.
반면 유럽 각국 의회에서는 로그롤링이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정당과 의원들의 규율이나 정책 성향이 지역구 사업보다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책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란 분석이다. 미국의 모든 정치활동은 ‘지역적(local)’이고, 유럽의 모든 정치활동은 ‘전국적(national)’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첨예한 이해관계로 얽힌 회원국 간에 여러 교섭이 이뤄져야 하는 유럽연합(EU) 의회에서는 ‘명시적 로그롤링’이 중요하다.
여의도 정가에도 로그롤링이 만연해 있다. 요즘 같은 예산철에 그 모습이 잘 드러난다. 지역구 민원 사업을 반영해 달라는 이른바 ‘쪽지 예산’이 주요 상임위원회로 몰려들고, 정당의 고위 당직자와 실세 의원들에게는 예산이 많이 배정된다. 몇몇 의원들이 투표거래 등 서로 지원하는 행위를 통해 지능적으로 예산을 챙기는 사례도 많이 보인다. 이들의 지역구 챙기기로 인해 내년도 예산 규모가 당초 정부안보다 10조원 이상 늘어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국민들은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에서 벗어나 예산안 심사를 실시간 감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예산낭비에 반대하는 시민의 모임’(CAGW)은 매년 ‘피그북(pig book)’이란 책자를 발간해 의회의 선심성·낭비성 사업과 예산 나눠 먹기를 고발한다. 올해의 세금낭비 의원도 선정해 낙선 대상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일반회원 120만명이 내는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한국도 일부 시민단체가 예산 감시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성규 <안동대 무역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