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5년 땀 흘렸는데, 밤손님 때문에 8000만원 손해…"인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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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털이범 막으려 농촌은 '초비상'
지난 9월27일 밤 10시, 충북 음성군 문암리의 한 산기슭.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나타났다. 검은 가림막에 덮인 인삼밭에 차가 멈추더니 한 남자가 호미와 마대자루를 손에 들고 차에서 내렸다. 차는 방향을 돌려 오던 길로 돌아갔고 혼자 남은 남자는 능숙하게 검은천으로 둘러싸인 인삼밭으로 몸을 숨겼다. 네 시간여 뒤 다시 차량이 나타나 남자가 캐낸 5년근 인삼(240㎏)으로 가득한 자루를 트렁크에 싣고 유유히 사라졌다.
지난달 음성경찰서에 붙잡힌 곽모씨(43) 등은 한 달여간 충북과 세종시 인근 인삼밭 여섯 곳을 돌며 범행을 저지른 인삼전문 털이범들이었다. 훔친 인삼은 1000여㎏으로 시가 4500만원어치다. 곽씨는 수차례 사전답사를 벌여 외떨어진 지역에 있는 4~5년근 인삼밭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폐쇄회로TV(CCTV) 판독 등으로 곽씨 일당을 붙잡은 경찰관은 “한번 턴 밭을 1주일 뒤에 다시 찾아 범행을 저지르는 대담함을 보였다”며 “훔친 인삼은 바로바로 팔아버려 피해자들에게 인삼을 돌려줄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해 인삼 수확의 약 80%가 집중되는 9월부터 11월까지 농촌에서는 인삼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6년까지 공들여 재배한 인삼을 훔쳐 한몫 챙기려는 인삼털이범들 때문이다. 인삼밭 대부분이 인가에서 떨어져 있고 일단 도난당한 인삼은 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수확철 인삼 재배 농민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적외선·열감지 센서를 이용한 도난방지장치, 헬리콥터를 이용한 항공 순찰, 주민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 등이 총동원돼 인삼 털이범들과 맞서고 있다.
‘전자지도’ 보며 4~6년근 인삼밭 집중 순찰
지난 12일 오후 7시, 충북 음성군 설성지구대 앞엔 두꺼운 점퍼에 야광조끼를 입은 최재식 설성 생활안전협의회 총무(62)와 마을 주민들이 모였다. 경찰관 한 명과 주민 두 명으로 조를 짜 자율방범대 차를 타고 인삼밭 밀집지역으로 향했다. 차량에 설치된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에는 ‘인삼 등 농산물 절도 예방기간’이란 문구가 번쩍였다. 읍내를 벗어나자 인삼밭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최 총무 일행은 두 시간가량 차를 타고 곳곳에 있는 인삼밭 주변을 살폈다. 야산에 있는 인삼밭에선 차에서 내려 손전등으로 가림막 안을 비춰보기도 했다.
설성지구대가 속한 음성경찰서는 지난해부터 인삼 수확철인 9~11월 경찰관과 주민 300여명으로 구성된 광역순찰대를 운영하고 있다. 광역순찰대는 음성군을 세 개 권역으로 나눠 매주 권역마다 세 차례 순찰을 돈다. 기존 경찰력만으론 야음을 틈타 찾아드는 인삼털이범들을 막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순찰대에는 음성군 내 강동대 경찰행정학과 여학생들도 포함돼 있다.
음성경찰서는 효과적인 순찰을 위해 2000여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인삼절도예방 전자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길안내 서비스와 위성지도에 617㏊에 달하는 관내 인삼밭을 일일이 표시했다. 인삼밭 아이콘을 클릭하면 재배 농민의 연락처와 인적사항도 파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주 범행 대상이 4년근 이상 인삼인 만큼 인삼밭의 재배연수에 따라 색깔 표시도 달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절도 위험이 큰 4~6년근 인삼밭을 따라 순찰로를 재편성했다. 그 결과 2014년 1~10월 인삼을 포함한 농산물 절도는 4건으로 2012년 같은 기간(31건)보다 87% 감소했다. 홍기현 음성경찰서장은 “경찰관 눈으로는 인삼이 2년근인지 6년근인지 구분할 수 없다”며 “절도 가능성이 높은 인삼밭을 선별하기 위해 인삼조합에서 데이터를 받아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농민들, 인삼밭 옆 컨테이너에서 생활
수확철 인삼 지키기 작전은 지상뿐 아니라 공중에서도 이뤄진다. 전북지방경찰청은 9월23일부터 항공순찰대 소속 헬리콥터를 이용해 정읍 김제 진안 남원 부안 등 관할 지역을 항공순찰하고 있다. 헬기에 부착된 고성능 카메라는 인삼밭과 농산물 창고 인근을 오가는 차량과 번호판을 촬영한다. 경찰은 해당 지역에서 절도 범죄가 발생하면 저장된 화면을 조회해 용의 차량을 선별한다. 순찰 도중 범죄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현장으로 이동한다.
김민택 전북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계장은 “노인이 많고, 인적이 드문 농촌지역은 절도범들의 범행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절도 피해를 막기 위해 올해에만 농촌 마을에 CCTV 2200여대를 새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경찰뿐 아니라 농촌진흥청도 인삼밭 등 농작물 경작지 절도 피해 예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농진청은 2010년 적외선·열감지·레이더 센서 등을 활용, 절도범이 농장 안에 침입하면 감지해 경고음을 울리고 해당 농민의 휴대폰에 이를 통보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 24㏊에 달하는 경작지를 보유한 농가 40곳에서 이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경찰과 관계당국이 인삼밭 절도 예방에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삼의 경우 한 번의 절도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삼을 재배하려면 파종 전에 2년간 휴지기를 두고, 비료 등으로 지력을 보충해야 한다. 5년근 인삼이 도난당하면 휴지기까지 합쳐 7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충북인삼농협 관계자는 “인삼의 질에 따라 다르지만 3300㎡(1000평) 규모의 5년근 인삼밭을 통째로 털리면 최소 8000여만원의 피해를 본다”며 “농민 입장에서는 단 한 번의 절도로 생계에 큰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40여년간 인삼농사를 해온 송두한 백야홍삼 대표는 “도둑들이 하도 기승을 부려 인삼 수확철이면 가족이 인삼밭 옆에 컨테이너를 놓고 지내면서 밤을 새워 지키기도 했다”며 “제사를 지내러 잠시 컨테이너를 비운 틈을 탄 사이에 도둑 맞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범인 잡혀도 인삼 돌려받기 어려워
수사당국과 피해 농민들은 인삼 절도는 전문지식을 갖춘 범인들이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일반인은 밭만 보고는 인삼의 등급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음성경찰서가 검거한 곽씨 역시 인삼을 재배하는 농민이었다. 검거되더라도 형량이 6개월~1년 정도여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사람들이 다시 ‘한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재범에 빠져든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범인을 잡더라도 훔쳐간 인삼을 돌려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삼 관련업에 종사하는 범인들이 자신들이 아는 중개상에 인삼을 팔아 넘기면 찾을 길이 막막해진다. 귀금속과 전자제품 등은 일련번호로 장물 여부를 조회할 수 있지만, 밭에서 훔친 농작물은 전문가라고 해도 육안으로 장물 여부를 알 수는 없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이 농산물에 스티커를 부착할 정도로 농산물 절도 범죄가 매우 심각하다”며 “유통인증제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음성=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지난달 음성경찰서에 붙잡힌 곽모씨(43) 등은 한 달여간 충북과 세종시 인근 인삼밭 여섯 곳을 돌며 범행을 저지른 인삼전문 털이범들이었다. 훔친 인삼은 1000여㎏으로 시가 4500만원어치다. 곽씨는 수차례 사전답사를 벌여 외떨어진 지역에 있는 4~5년근 인삼밭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폐쇄회로TV(CCTV) 판독 등으로 곽씨 일당을 붙잡은 경찰관은 “한번 턴 밭을 1주일 뒤에 다시 찾아 범행을 저지르는 대담함을 보였다”며 “훔친 인삼은 바로바로 팔아버려 피해자들에게 인삼을 돌려줄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 해 인삼 수확의 약 80%가 집중되는 9월부터 11월까지 농촌에서는 인삼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6년까지 공들여 재배한 인삼을 훔쳐 한몫 챙기려는 인삼털이범들 때문이다. 인삼밭 대부분이 인가에서 떨어져 있고 일단 도난당한 인삼은 유통 경로를 추적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수확철 인삼 재배 농민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적외선·열감지 센서를 이용한 도난방지장치, 헬리콥터를 이용한 항공 순찰, 주민들로 구성된 자율방범대 등이 총동원돼 인삼 털이범들과 맞서고 있다.
‘전자지도’ 보며 4~6년근 인삼밭 집중 순찰
지난 12일 오후 7시, 충북 음성군 설성지구대 앞엔 두꺼운 점퍼에 야광조끼를 입은 최재식 설성 생활안전협의회 총무(62)와 마을 주민들이 모였다. 경찰관 한 명과 주민 두 명으로 조를 짜 자율방범대 차를 타고 인삼밭 밀집지역으로 향했다. 차량에 설치된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에는 ‘인삼 등 농산물 절도 예방기간’이란 문구가 번쩍였다. 읍내를 벗어나자 인삼밭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최 총무 일행은 두 시간가량 차를 타고 곳곳에 있는 인삼밭 주변을 살폈다. 야산에 있는 인삼밭에선 차에서 내려 손전등으로 가림막 안을 비춰보기도 했다.
설성지구대가 속한 음성경찰서는 지난해부터 인삼 수확철인 9~11월 경찰관과 주민 300여명으로 구성된 광역순찰대를 운영하고 있다. 광역순찰대는 음성군을 세 개 권역으로 나눠 매주 권역마다 세 차례 순찰을 돈다. 기존 경찰력만으론 야음을 틈타 찾아드는 인삼털이범들을 막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순찰대에는 음성군 내 강동대 경찰행정학과 여학생들도 포함돼 있다.
음성경찰서는 효과적인 순찰을 위해 2000여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인삼절도예방 전자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포털사이트가 제공하는 길안내 서비스와 위성지도에 617㏊에 달하는 관내 인삼밭을 일일이 표시했다. 인삼밭 아이콘을 클릭하면 재배 농민의 연락처와 인적사항도 파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주 범행 대상이 4년근 이상 인삼인 만큼 인삼밭의 재배연수에 따라 색깔 표시도 달리했다. 이를 바탕으로 절도 위험이 큰 4~6년근 인삼밭을 따라 순찰로를 재편성했다. 그 결과 2014년 1~10월 인삼을 포함한 농산물 절도는 4건으로 2012년 같은 기간(31건)보다 87% 감소했다. 홍기현 음성경찰서장은 “경찰관 눈으로는 인삼이 2년근인지 6년근인지 구분할 수 없다”며 “절도 가능성이 높은 인삼밭을 선별하기 위해 인삼조합에서 데이터를 받아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농민들, 인삼밭 옆 컨테이너에서 생활
수확철 인삼 지키기 작전은 지상뿐 아니라 공중에서도 이뤄진다. 전북지방경찰청은 9월23일부터 항공순찰대 소속 헬리콥터를 이용해 정읍 김제 진안 남원 부안 등 관할 지역을 항공순찰하고 있다. 헬기에 부착된 고성능 카메라는 인삼밭과 농산물 창고 인근을 오가는 차량과 번호판을 촬영한다. 경찰은 해당 지역에서 절도 범죄가 발생하면 저장된 화면을 조회해 용의 차량을 선별한다. 순찰 도중 범죄 신고가 접수되면 바로 현장으로 이동한다.
김민택 전북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계장은 “노인이 많고, 인적이 드문 농촌지역은 절도범들의 범행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절도 피해를 막기 위해 올해에만 농촌 마을에 CCTV 2200여대를 새로 설치했다”고 말했다.
경찰뿐 아니라 농촌진흥청도 인삼밭 등 농작물 경작지 절도 피해 예방에 적극 나서고 있다. 농진청은 2010년 적외선·열감지·레이더 센서 등을 활용, 절도범이 농장 안에 침입하면 감지해 경고음을 울리고 해당 농민의 휴대폰에 이를 통보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 24㏊에 달하는 경작지를 보유한 농가 40곳에서 이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경찰과 관계당국이 인삼밭 절도 예방에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삼의 경우 한 번의 절도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삼을 재배하려면 파종 전에 2년간 휴지기를 두고, 비료 등으로 지력을 보충해야 한다. 5년근 인삼이 도난당하면 휴지기까지 합쳐 7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충북인삼농협 관계자는 “인삼의 질에 따라 다르지만 3300㎡(1000평) 규모의 5년근 인삼밭을 통째로 털리면 최소 8000여만원의 피해를 본다”며 “농민 입장에서는 단 한 번의 절도로 생계에 큰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40여년간 인삼농사를 해온 송두한 백야홍삼 대표는 “도둑들이 하도 기승을 부려 인삼 수확철이면 가족이 인삼밭 옆에 컨테이너를 놓고 지내면서 밤을 새워 지키기도 했다”며 “제사를 지내러 잠시 컨테이너를 비운 틈을 탄 사이에 도둑 맞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범인 잡혀도 인삼 돌려받기 어려워
수사당국과 피해 농민들은 인삼 절도는 전문지식을 갖춘 범인들이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일반인은 밭만 보고는 인삼의 등급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음성경찰서가 검거한 곽씨 역시 인삼을 재배하는 농민이었다. 검거되더라도 형량이 6개월~1년 정도여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사람들이 다시 ‘한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재범에 빠져든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범인을 잡더라도 훔쳐간 인삼을 돌려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삼 관련업에 종사하는 범인들이 자신들이 아는 중개상에 인삼을 팔아 넘기면 찾을 길이 막막해진다. 귀금속과 전자제품 등은 일련번호로 장물 여부를 조회할 수 있지만, 밭에서 훔친 농작물은 전문가라고 해도 육안으로 장물 여부를 알 수는 없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이 농산물에 스티커를 부착할 정도로 농산물 절도 범죄가 매우 심각하다”며 “유통인증제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음성=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