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보험공사, 은행이 실거래 확인 소홀했다면 보험금지급 안해도 돼"
은행이 배 건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선박 발주처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조선사로 지급했다면 보증을 선 무역보험공사가 은행에 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뒤늦게 알려졌다. 금융권은 이 판결이 진행 중인 무보와의 ‘모뉴엘 사태’ 책임 공방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까 긴장하는 모습이다.

서울고등법원은 경영난으로 주문받은 선박을 건조하지 못한 신아SB에 공사대금조로 미리 지급된 돈을 선수금환급보증을 선 국민은행이 발주사에 대신 돌려주고, 수출보증보험에 따라 무보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한 건에 대해 1심에 이어 지난달 13일 은행 패소결정을 내렸다. 배 건조 관련 서류 확인을 소홀히 한 은행의 책임이라는 판단이다.

국민은행은 발주사에서 선수금을 받아 배 건조 단계에 따라 신아SB에 돈을 지급하는 에스크로 계좌 역할을 했다. 발주처에는 배 건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선수금을 책임지겠다는 선수금환급보증서(RG)를 끊어줬다. 국민은행은 대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무보에 수출보증보험을 들었다.

신아SB가 2009년 말 채권금융회사에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RG 계약에 따라 발주처에 396억원을 대신 지급한 국민은행이 관련 보험금을 무보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신아SB의 배 건조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신아SB에 돈을 지급한 국민은행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무보의 손을 들어줬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신아SB가 배 건조 절차에 따라 맺는 하청업체들과의 세금계산서, 거래명세서 등의 기본적인 증빙서류를 챙기지 않았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신아SB가 돈을 대출받을 수 있는 일종의 채권과 마찬가지인 서류들을 국민은행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건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권은 이번 판결이 모뉴엘 사태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다른 업종에서의 일이지만 은행이 여신이든, 선수금 지급이든 정확한 실물 거래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돈을 내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서다.

이처럼 책임 소재를 둘러싼 분쟁이 이어지면서 은행 영업현장에선 무보 보증서를 받지 않으려는 기류도 감지된다. 무보 관계자는 “기업이 선적후신용보증 같은 무보 보증서를 내도 은행이 대출을 기피하고,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서나 부동산 담보 등을 요구한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무보도 감사원 감사 등을 의식해 보험금 지급 요건을 따지는 것”이라며 “무보와 은행 간 문제가 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