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리포트] '복지관광' 비아냥 듣는 東유럽 이민자들…'하나의 유럽' 갈라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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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역군서 골칫거리로'…이민자 문제로 시끄러운 EU
1985년 솅겐조약 이후 복지혜택 좋은 西유럽으로 東유럽 빈곤층 속속 이주
"재정 축내고 일자리 뺏는다"…英·佛 등 이민제한 움직임
反이민 정서 확산으로 "EU 반대" 극우정당 인기…유럽 내 분열 심화
1985년 솅겐조약 이후 복지혜택 좋은 西유럽으로 東유럽 빈곤층 속속 이주
"재정 축내고 일자리 뺏는다"…英·佛 등 이민제한 움직임
反이민 정서 확산으로 "EU 반대" 극우정당 인기…유럽 내 분열 심화
유럽연합(EU) 국가 사이에서 ‘하나의 유럽’이란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발단은 각국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이민자들 때문이다. EU는 활발한 인적 교류를 목적으로 회원국 간 인구 이동을 제한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EU 출범 후 21년 동안 인구 이동이 빠르게 늘었다. 출산율이 낮은 서유럽 국가에 젊은 노동인구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 부담이 늘어나면서 재정 악화가 가속화됐다. 서유럽 국가로 이주한 뒤 일정한 직업 없이 실업급여 등 각종 복지 혜택만 누리는 동유럽 국가 국민을 비판하는 ‘복지 관광(welfare tourism)’이란 용어까지 생겼다. 영국을 중심으로 이민자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각국에서 극우정당이 세력을 얻으면서 EU가 분열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복지 관광 논란에 정치 이슈까지
EU 회원국은 1985년 체결된 솅겐조약에 따라 각국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거주할 수 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26개 국가가 이 조약에 가입돼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사회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EU 내 선진국에는 동유럽 빈곤계층의 유입이 갈수록 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최근 1년 동안에만 26만명의 인구가 늘었다. 올해부터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민에게 EU 노동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2007년 EU 내 최빈국인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면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 9개 국가는 이들 국가 국민의 이민을 유보했다. 복지 관광에 따른 재정 부담을 우려해서다. EU 내 통합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격렬한 논쟁이 이뤄졌고 결국 지난 1월 이들 국가 국민의 이주가 허용됐다.
이민자가 늘수록 정부의 비용 부담은 커지고 자국민의 일자리 부족 현상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서유럽에서 동유럽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독일과 프랑스의 보수진영에서는 이민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민자 규제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민의 이주가 전격 허용된 직후 이민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차등 적용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작년부터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있는 규정 때문에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며 “이런 상태라면 차라리 EU를 탈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영국은 이민자에게 지급했던 실업 육아수당을 축소하고 일자리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이민자에 대한 학생 비자 발급을 금지하는 등 이민자 규제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무직자에 대한 이주 제한을 골자로 한 새 이민법도 준비하고 있다. 영국의 이런 움직임은 국내 정치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영국 내에서는 보수층을 중심으로 반(反)이민 정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EU 탈퇴와 이주민 반대를 내세우는 극우성향의 영국독립당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재집권에 위기의식을 느낀 캐머런 총리가 내년 5월 총선을 겨냥해 강력한 이민자 규제 대책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문제를 겪으면서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캐머런 총리가 ‘이민자 카드’를 내세워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민 제한으로 대립하는 EU 국가들
영국 외 다른 EU 국가들도 자국의 노동시장과 복지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이민자 규제에 골몰하고 있다. 관대한 이민 정책으로 이민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하는 스웨덴에서는 이민자를 지원하는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지난 2월 이민자 수를 제한하고 복지 혜택을 줄이는 내용의 이민제한법을 통과시켰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2007년 EU와 자유노동시장 규칙을 맺어 EU 시민이면 비자 없이도 스위스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12년까지 스위스로 유입된 이민자 수는 연평균 7만4000명씩 늘었다. 이민제한법을 발의한 우파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은 “이민자 증가는 일자리, 주택, 교육,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제 사회적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이민 제한 움직임에 독일은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EU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복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을 향해 “차라리 영국이 EU를 떠나는 게 낫겠다”고 맞불을 놨다. EU집행위원회도 “유럽 통합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주의 자유”라고 반발했다.
◆“이민자 효과 과소평가” 지적도
이런 상황에서 EU 최고 법원 유럽사법재판소(ECJ)의 최근 판결이 이민 규제에 대한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ECJ는 지난 11일 2010년부터 독일 라이프치히에 거주해온 루마니아 여성이 독일 정부에 복지 수당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사건에 대해 “독일 정부는 구직 노력을 하지 않은 이주민에게는 실업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이 여성은 독일 정부에서 육아와 생계 수당 명목으로 한 달에 317유로(약 43만4700원)의 보조금을 받다가 보조금이 끊기자 소송을 냈다.
이민자에 대한 규제가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여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부유해졌다”며 “이민자들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솅겐조약
Schengen agreement.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체결된 국경 개방 조약이다. 1985년 독일, 프랑스,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5개국이 국경을 개방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국제조약을 룩셈부르크 솅겐에서 선언한 데서 유래했다. 현재 26개 국가가 가입돼 있다. 조약은 회원국 간 국경을 철폐하고 출입국 수속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회원국 국민을 자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복지 관광 논란에 정치 이슈까지
EU 회원국은 1985년 체결된 솅겐조약에 따라 각국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거주할 수 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26개 국가가 이 조약에 가입돼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사회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EU 내 선진국에는 동유럽 빈곤계층의 유입이 갈수록 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최근 1년 동안에만 26만명의 인구가 늘었다. 올해부터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민에게 EU 노동시장이 전면 개방되면서 유입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2007년 EU 내 최빈국인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면서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 9개 국가는 이들 국가 국민의 이민을 유보했다. 복지 관광에 따른 재정 부담을 우려해서다. EU 내 통합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격렬한 논쟁이 이뤄졌고 결국 지난 1월 이들 국가 국민의 이주가 허용됐다.
이민자가 늘수록 정부의 비용 부담은 커지고 자국민의 일자리 부족 현상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서유럽에서 동유럽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독일과 프랑스의 보수진영에서는 이민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민자 규제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민의 이주가 전격 허용된 직후 이민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차등 적용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작년부터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고 있는 규정 때문에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며 “이런 상태라면 차라리 EU를 탈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영국은 이민자에게 지급했던 실업 육아수당을 축소하고 일자리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이민자에 대한 학생 비자 발급을 금지하는 등 이민자 규제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무직자에 대한 이주 제한을 골자로 한 새 이민법도 준비하고 있다. 영국의 이런 움직임은 국내 정치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영국 내에서는 보수층을 중심으로 반(反)이민 정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EU 탈퇴와 이주민 반대를 내세우는 극우성향의 영국독립당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재집권에 위기의식을 느낀 캐머런 총리가 내년 5월 총선을 겨냥해 강력한 이민자 규제 대책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문제를 겪으면서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캐머런 총리가 ‘이민자 카드’를 내세워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민 제한으로 대립하는 EU 국가들
영국 외 다른 EU 국가들도 자국의 노동시장과 복지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이민자 규제에 골몰하고 있다. 관대한 이민 정책으로 이민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하는 스웨덴에서는 이민자를 지원하는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국민투표를 통해 지난 2월 이민자 수를 제한하고 복지 혜택을 줄이는 내용의 이민제한법을 통과시켰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2007년 EU와 자유노동시장 규칙을 맺어 EU 시민이면 비자 없이도 스위스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2012년까지 스위스로 유입된 이민자 수는 연평균 7만4000명씩 늘었다. 이민제한법을 발의한 우파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은 “이민자 증가는 일자리, 주택, 교육,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제 사회적 재앙”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이민 제한 움직임에 독일은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EU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은 복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을 향해 “차라리 영국이 EU를 떠나는 게 낫겠다”고 맞불을 놨다. EU집행위원회도 “유럽 통합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주의 자유”라고 반발했다.
◆“이민자 효과 과소평가” 지적도
이런 상황에서 EU 최고 법원 유럽사법재판소(ECJ)의 최근 판결이 이민 규제에 대한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ECJ는 지난 11일 2010년부터 독일 라이프치히에 거주해온 루마니아 여성이 독일 정부에 복지 수당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사건에 대해 “독일 정부는 구직 노력을 하지 않은 이주민에게는 실업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이 여성은 독일 정부에서 육아와 생계 수당 명목으로 한 달에 317유로(약 43만4700원)의 보조금을 받다가 보조금이 끊기자 소송을 냈다.
이민자에 대한 규제가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민자를 받아들여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부유해졌다”며 “이민자들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솅겐조약
Schengen agreement.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체결된 국경 개방 조약이다. 1985년 독일, 프랑스,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5개국이 국경을 개방하고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국제조약을 룩셈부르크 솅겐에서 선언한 데서 유래했다. 현재 26개 국가가 가입돼 있다. 조약은 회원국 간 국경을 철폐하고 출입국 수속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회원국 국민을 자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