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 팬인 직장인 이현석 씨(38)는 SK 와이번스 팬이 부럽다. 야구를 좋아하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와인을 곁들여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문학구장에 갈 때면 가슴 한구석이 허전하다. 반면 SK 골수 팬인 김수영 씨(42)는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한 구단이 야속하다. 아홉 살, 일곱 살짜리 두 아이가 놀이동산보다 좋아하는 나들이 코스가 바로 문학구장 ‘바비큐존’이기 때문이다.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명승부 끝엔 한 팀의 승자만 남는다. 하지만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그라운드 밖의 노력에선 모두가 한마음이다. 프로구단들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팬 서비스를 늘리기 위해 열을 올리는 이유다.

인천을 연고로 한 SK가 국내 프로구단 최초로 홈 구장인 인천 문학야구장에 바비큐존을 만든 건 2009년. 가족, 연인, 회사 동료끼리 회식과 관람을 동시에 즐기게 하겠다며 ‘프리미엄 좌석제’를 도입했다. SK의 실험은 개막전부터 전 좌석 매진과 바비큐존 예매율 100%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 프로구단 사이에서 ‘관중석 경제학’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냈을 만큼 경기장을 활용한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 손꼽혔다.

이런 SK와 달리 창단 후 처음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넥센엔 뛰어난 경기력과 성적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웃지 못할 사정이 있다. 내년 새 시즌 수익사업 준비와 경기장 임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목동과 잠실 등 서울에 있는 프로야구 경기장의 주인은 서울시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서는 야구장을 민간이 운영할 수 있는 체육시설업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프로야구단이 이용하는 야구장은 모두 연고지인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면서 각 구단에 임대 또는 관리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목동야구장을 빌려 쓰는 넥센의 고민은 임대 방식과 구장 운영권에서 시작된다. 넥센은 프로야구 9개팀 가운데 지자체(서울시)로부터 일일임대 방식으로 경기장을 빌려 쓰는 유일한 구단이다. 경기장 광고권과 매점 운영권도 1~3년 단위로 재계약해야 한다. 서울시가 재계약을 거부하고 목동야구장을 임대하지 않겠다고 하면 넥센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도 속이 쓰리긴 마찬가지다. 잠실구장의 경우 프로야구 8개 경기장 중 구단의 경기장 광고 수입이 전무한 유일한 곳이다. 소유주인 서울시가 100억원대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경기장 광고대행권을 광고대행 회사에 주고 그 대가를 전부 가져가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9개 구단 중 5년 이상 경기장 위탁운영권을 확보한 곳은 SK(인천문학)와 KIA 타이거즈(광주챔피언스필드), KT 위즈(수원) 등 세 곳뿐이다. 나머지 6개 구단은 짧게는 ‘하루살이(일일임대)’부터 길어야 3년 단위로 위탁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계약 기간도 그렇지만 운영권 자체가 구단에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경기장 운영권을 가지지 못하면 구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또 운영 과정에서 지자체의 까다로운 조례와 복잡한 관계 법령 때문에 팬 서비스를 위해 경기장을 활용한 투자 활동을 벌이기도 어렵다. 여러 구단이 문학경기장 바비큐존 같은 프리미엄 좌석에 마음 놓고 투자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프로야구(MLB) 뉴욕 양키스는 뉴욕시에 40년간 400달러를 지급한다. 1년에 10달러, 한국 돈 1만원 꼴이다. 계약 조건은 명확하고 분명하다. 양키스가 향후 20년간 뉴욕시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내 다른 구단들도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큰 틀에서 상생을 전제로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저렴한 가격에 경기장을 장기 임대해주고 구단의 마케팅 투자를 유도한다. 경기장을 지역 내 랜드마크로 키워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한편 얻어진 수익은 나눠 갖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 개정과 더불어 지자체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스포츠산업 전문 이윤남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프로구단들이 사용하는 경기장은 지자체가 소유한 공공재산인데, 프로스포츠의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다른 공공재산과 동일하게 경기장 사용을 제한하고 규제하다 보니 프로구단이 이를 스포츠산업으로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스포츠산업진흥법에서 국가는 프로스포츠 육성에 관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관련 법령이나 조례의 불합리한 제약 등으로 인해 프로스포츠의 산업화는 아직 요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정우 한경닷컴 문화레저 파트장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