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득권을 깨야 창조경제 영근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살아온 세대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만큼 엄청난 변화를 실생활로 체험해 왔다. 이 변화를 주도했거나 수용한 사람들조차도 그 성취를 반신반의할 만큼 격랑의 연속이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한국 사회가 국제 비교로도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까닭은 많은 이들이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탓도 크다.

고도성장이 마무리될 즈음 들이닥친 정보화와 세계화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시대조류다. 거스르면 낙오할 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기존 생활 방식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 딱할 따름이다. 한편으로는 이들을 납득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새 환경에 맞춰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당한 생활 방식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 이 시대의 과제다.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한국은 다행히도 남보다 먼저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구축하고 발 빠르게 모바일 시대를 열어가고 있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변화는 시작일 뿐이다. 새로운 기술은 아날로그적 인간생활의 많은 면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재래식 제도와 관행 등을 고집하면 낙오할 것이고 선제적으로 새 기술에 맞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개발해야 번영한다. 우물쭈물 실기하면 재빨리 갖춰 놓은 디지털 기반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재래식 유통구조에서는 공장도 가격이 100인 와이셔츠가 백화점에서 230에 팔렸다. 생산과정보다 유통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부가가치가 생산됐다는 말이다. 그만큼 유통과정에는 독과점이 팽배했고 생산과정보다 더 많은 인력이 매달렸다. 그런데 디지털 전자상거래는 유통과정의 독과점을 허물고 인력까지 감축하는 새로운 거래방식이다. 기존 유통과정보다 상품 판매가격을 크게 낮추기 때문에 전자상거래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통과정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화한다면 해당 상품의 가격인하 효과가 전반적 물가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임금인상 요구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물론 경쟁에서 밀리는 재래식 유통 부문은 인력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임금이 안정되면 생산 부문이 고용을 확대해 유통 부문의 방출 인력까지 수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낡고 비효율적인 일은 거두고 새롭게 필요해진 일을 하도록 만들면서 같은 시간 일하면서도 더 풍요롭게 살게 만든다. 그러므로 전반적 유통과정의 전자화는 창조경제가 반드시 겨냥할 만한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IT 인프라로만 보면 세계 일류인 한국에서 불편한 제도 때문에 온라인 거래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아마존은 공인인증서 없이도 활발하게 거래하는데 우리는 ‘천송이 코트’의 구입이 어렵다. 세계 첨단의 IT 인프라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사용자들이 불편하게 느끼는 한 전자상거래와 금융거래는 활성화될 수 없다. 물론 안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거래 활성화를 막는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최고의 안전은 거래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니 안전만 추구하자면 거래 자체를 금지할 일이다.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어떻게 안전문제를 관리하면서 전자거래를 확장하고 있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모든 창조는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데 슘페터는 이것을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파괴당하는 기존의 틀에서 이익을 누리는 기득권 집단은 반드시 창조에 저항한다. 기득권의 저항이 강력하면 반드시 수용해야 할 창조조차 거부당하므로 창조경제를 창달하려면 이 저항을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

전자거래의 공인인증서 문제도 본질은 기득권의 저항이다. 대학 기숙사 신축을 반대하는 대학가 주변 하숙집, 대형 마트와 유명프랜차이즈 제과점에 저항하는 중소 상인, 그리고 대기업 제품에 밀리는 중소기업의 원성까지도 마찬가지다. 창조적 파괴를 거부하는 기득권에 굴복할 일이 아니라 창조는 북돋우면서 피해 서민들이 달리 살 길을 찾도록 도와주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shoonlee@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