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19일 오후 3시58분

국내 대기업의 기업 인수·투자 규모가 해외 주요 경쟁사의 9분의 1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글로벌 경쟁 격화로 수익성이 둔화되는 가운데 규제 강화, 총수 부재 등이 겹치다 보니 인수합병(M&A)을 통한 신사업 진출이나 기술 확보 대신 상생이나 협력 차원의 투자만 간간이 진행되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와 머저마켓이 공동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포스코, 롯데쇼핑, NHN, 현대중공업, 신한금융지주 등 국내 대기업 열 곳의 2012년 이후 올해 3분기까지 기업 인수·투자 규모를 집계한 결과 총 40건, 5조9047억원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페이스북(21조6000억원) 한 곳이 투자한 규모의 4분의 1에 불과한 액수다.
[마켓인사이트] 국내 기업 '초라한' M&A 실적…해외 경쟁사의 9분의 1 수준
○삼성전자, 애플 투자 규모의 5분의 1

한경이 시가총액, 업종 등을 고려해 선정한 해외 경쟁사 10곳(인텔, 마이크론, 제너럴모터스, 신일철, 크로거, 텐센트, 다우케미칼, 미쓰비시UFJ, NTT도코모, 미쓰비시중공업)의 인수·투자 규모는 96건, 35조4987억원에 달했다. 이 중 27건은 인수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실제 규모는 50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투자은행(IB)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이 기업 인수 등에 1조원을 투자할 때 해외 경쟁자들은 그 아홉 배가량을 ‘쐈다’는 얘기다.

국내 대기업은 2012년 직전까지만 해도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2007년, 5조원) 등 국내외에서 거침없이 조단위 기업 인수를 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는 롯데쇼핑이 사들인 하이마트를 제외하면 중대형 기업 인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최대 해외 경쟁사인 애플만 놓고 비교해도 차이는 두드러진다. 2012년 이후 애플이 외부 자문사를 통해 사들인 기업은 17곳으로 총 인수금액은 4조8440억원이었다. 이 중 6건은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실제 인수 규모는 6조원을 웃돈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상대인 삼성전자의 인수·투자 규모는 8764억원에 그쳤다.

○규제 등에 발목 잡힌 한국 기업

IB 업계 전문가들은 “단순히 규모가 작은 것보다 M&A의 질적인 차이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인수기업 17곳 중 1곳을 제외한 모든 기업의 지분 100%를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했다. 반도체(아노비트, 파시프), 헤드폰(비츠일렉트로닉스), 3D동작인식(프라임센스), 지문인식(오센텍),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컬러랩스, 스내피) 전 업종을 아우르며 모바일 분야의 경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같은 기간 신사업 진출 및 기술 확보 차원에서 경영권을 인수한 기업은 나노라디오 등 6건, 5047억원어치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대기업의 영역 확장에 대한 우려섞인 국내 시선 탓에 모두 해외에서 사들였다. 나머지는 팬텍과 일본 샤프의 주식 일부를 인수하는 등 경영권과 관련 없는 협력 강화 차원의 투자였다.

고경봉/정영효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