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작업장에서 현장 직원이 블록을 잇는 용접작업을 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작업장에서 현장 직원이 블록을 잇는 용접작업을 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지난 14일 부산 봉래동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공장으로 들어서니 입구 바로 앞 야적장에서 운반차량이 블록을 작업장 쪽으로 한창 옮기고 있었다. 야적장에는 3~4개의 블록이 만들어져 조립과 용접 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운반차량을 따라가 보니 ‘No 7조립장’이 나타났다. 용접작업과 블록조립장 역할을 하는 이곳에서는 블록들을 잇는 용접작업을 하면서 철판에 불꽃이 튀고 있었다. 7조립장 바로 옆 패널용접장에는 배철판을 두드리는 해머소리가 ‘쾅 쾅’ 하는 소리를 내면서 활기를 더했다. 이동철 작업장 기장은 “현장에서 모처럼 불꽃이 튀고 철판 소리가 나고 있다”며 “조선소가 살아나는 신호”라며 환히 웃었다. 3년여 만에 터키선주사로부터 수주한 18만t급 벌크선의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동안 수주 부진과 노사분규 영향으로 임대를 줬던 선박 야드 작업장은 모두 비워 ‘작업 스탠바이’ 상태를 유지했다. 이정환 홍보팀장은 “철판이 현장에 끊임없이 들어오고 배 부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내년부터 의장과 전장, 페인트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선박 모습을 갖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문 사장
최성문 사장
‘대한민국 조선1번지’ 한진중공업이 최근 들어 꿈틀대고 있다. 영도조선소는 적자를 보이던 실적이 지난 1분기 영업이익 199여억원을 기록, 흑자로 돌아서면서 원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해 수주 재개로 조업이 빠르게 정상화되면서 적자폭이 줄고 있고, 수빅조선소도 수주가 이어지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영도조선소는 지난해 특수선을 포함해 15척의 물량을 수주했다. 이어 올 들어 세계 최초로 LNG벙커링선(액화천연가스 연료공급선박) 수주에 성공했다. 유럽 선주들과 18만t급 벌크선 2척을, 방위산업청으로부터는 차기고속정 1척 등 3척을 2억달러에 수주했다. 지난 14일에는 1900TEU급 컨테이너선 2척을 7000만달러에 수주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조선소 현장뿐 아니라 설계부서도 바쁘다. 한진중공업의 선박설계를 맡고 있는 계열사 TMS의 조현찬 설계실장은 “잇단 수주로 야간작업에다 주말특근까지 하는 등 설계작업도 바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2016년까지 안정적인 조업물량을 확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수빅조선소도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총 45척, 29억달러 규모의 건조 계약을 성사시켜 2017년까지 3년치의 안정적인 조업 물량을 확보했다. 다른 대형 조선소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로 전환돼 경영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다른 조선소가 적자를 감수하고 수주를 진행해 적자행진을 하고 있는데, 한진중공업은 당시 노사문제 등으로 적자 수주를 하지 않고 최근 들어 수주행진에 나선 것이 회사에 오히려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한진중공업은 지역 돕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영도조선소 인근의 전통시장인 남항시장과 손잡고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를 지난 10일 열었다. 남항시장에서 구입한 배추 2600포기로 김치를 직접 담가 지역 저소득 가구 1300가구에 전달했다. 2년 연속으로 진행된 올해 김장 행사에선 ‘행복한 전통시장’ 프로젝트와 연계해 절인 배추와 각종 양념 재료 등을 인근 전통시장에서 구입했다. 한진중공업이 남항시장에서 구입한 배추와 젓갈,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재료비만 총 3000여만원에 달한다.

정철상 홍보기획 상무는 “단순히 어려운 이웃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에까지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다 ‘행복한 전통시장’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며 “앞으로 전통시장 상품권을 활용한 이웃돕기 등 다양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임정길 남항시장 상인회장은 “담근 김치는 영도구 내 홀몸노인과 소년소녀가장 가구 등에 5㎏씩 전달해 이웃에게 도움을 줬고, 침체돼 있던 시장에도 많은 도움이 돼 상인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1937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조선소인 한진중공업은 우리나라를 조선강국으로 발전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고 르노삼성자동차에 이어 부산지역 제조업체 매출 2위를 기록, 지역경제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8년 불어닥친 조선 해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었고,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 갈등 등으로 극심한 노사분규와 수주 가뭄의 악순환이 겹쳐 고전하기도 했지만 올 들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성문 한진중공업 사장은 “국내외 수주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설계와 제작이 제대로 가동되거나 본격화되고 있다”며 “부산과 필리핀을 잇는 조선제조 국제화 전략과 함께 고부가가치 선박과 중장기적으로 중대형 컨테이너와 해양플랜트를 지을 수 있도록 조선소 용지를 확장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