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재 벡스인터코퍼레이션 사장 "10년 동안 발로 뛰며 美 시장 공략…고급 유기농식료품체인 뚫었죠"
미국의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은 유기농산물과 식품을 판매하는 유통체인으로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회사는 까다로운 입점 심사로 유명하다. 엄선된 제품만 갖다놓는 이 회사의 문호를 작년 말 한국의 벡스인터코퍼레이션이 열었다. 친환경 과일채소 세정제를 생산하는 벡스인터코퍼레이션이 이를 뚫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 홀푸드마켓에 전시된 베지아쿠아.
미국 홀푸드마켓에 전시된 베지아쿠아.
2011년 5월 뉴욕. 허름한 호텔 앞에 경찰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멈춰섰다. 무장 경찰이 호텔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방안으로 진입한 이들은 안에 있는 사람들의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게 한 뒤 가방과 박스 그리고 방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방안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포장재를 바꾸고 있는데 혹시 마약을 다루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신고가 들어간 것이다. 조사를 받은 사람은 김만재 벡스인터코퍼레이션사장(당시 39세)과 이 회사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친환경 세정제 ‘베지아쿠아’를 꺼내 겉포장지를 바꾸고 있었다.

김 사장은 “미국에선 제품 표면에 ‘FDA인증’이나 ‘살균’이라는 말을 쓰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안 뒤 한 호텔에서 제품의 레이블을 급하게 바꾸던 중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김 사장의 미국시장 개척은 험난한 여정의 연속이었다.

뉴욕에 제품을 갖다놨다가 친환경 채소과일세정제 ‘베지아쿠아’가 얼어 터져 난감한 상황에 빠진 적도 있다. 시장 개척을 위해 미국 서부에서 동부로 수천㎞씩 직접 운전해 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차가 반쯤 부서지는 아찔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김만재 벡스인터코퍼레이션 사장 "10년 동안 발로 뛰며 美 시장 공략…고급 유기농식료품체인 뚫었죠"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친 김 사장은 LG그룹을 거쳐 2003년 벡스인터코퍼레이션에 입사했다. 부친인 김명원 범우연합 회장이 2002년 설립한 이 회사에 입사해 주로 마케팅을 담당했다.

벡스인터코퍼레이션은 방청 및 윤활제인 ‘WD-40’을 비롯, 정밀산업용 세정제인 LCD세정제 등을 제조하는 업체다. 제품 다각화를 위해 베지아쿠아를 개발했지만 이를 파는 것은 무척 힘들었다. 화학물질이 첨가되지 않은 음이온 세정제여서 강점은 있었지만 이를 일반인에게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는 발로 뛰기로 했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겨냥하기로 했다. 자신이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도 있지만 미국 시장에서 통하면 다른 나라도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통업체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미국 내 몇몇 소규모 한인마트를 개척했지만 이것으론 부족했다. 본격적인 시장 개척을 위해선 홀푸드마켓을 뚫는 게 급선무였다. 김 사장은 “홀푸드마켓은 유기농산물과 식품을 판매하는 유통체인으로 특히 고급제품을 진열하고 있어 미국 소비자에게 신뢰도가 무척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홀푸드마켓은 고품질의 상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상품 선정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각종 공인기관 테스트를 거쳤다. 김 사장은 “한국의 서울대, 일본의 식품분석센터에서 인체 안전성 테스트를 받았고 미국 FDA 시험인증기관인 슈스터에서 인증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는 “이런 시험을 통해 오염물과 미생물 제거에 효과가 있다는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 9월 홀푸드마켓 문을 두드렸다. 홀푸드마켓은 자회사 시험기관을 통해 1년 정도 각종 테스트를 실시했다.

홀푸드마켓은 ‘에코스케일’이라는 자체 품질시스템을 활용해 약 360가지의 세부항목에 대해 심사한다. 이런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제품을 ‘레드(Red)’부터 ‘오렌지(Orange)’ ‘옐로(Yellow)’ ‘그린(Green)’에 이르기까지 등급을 분류하는데 그린에 가까울수록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제품임을 뜻한다. 레드 등급을 받으면 아예 입점할 수 없다.

김 사장은 “베지아쿠아는 이 중 친환경 최고 등급인 그린등급을 받았다”며 “그린등급은 국내 제품으로는 베지아쿠아가 최초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베지아쿠아처럼 음이온 방식을 활용해 만든 친환경세정제가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제품 상품화는 모기업인 범우연합 소속 BIT범우연구소의 연구개발에 힘입은 것이다. 김 사장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범우연합 연구개발센터인 BIT범우연구소에는 벡스인터코퍼레이션 전체 인원(25명)의 3배가 넘는 81명의 연구인력이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21명이 석·박사급이다. 주로 화학공학과 생명공학 전공자들이다. 범우연합은 압연유, 절삭유, 방청유 등 산업용 윤활유를 제조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마침내 작년 8월 홀푸드마켓의 입점 허가가 떨어졌다. 미국시장 개척에 나선 지 약 10년 만에 대표적인 유기농제품 유통업체의 문을 연 것이다.

김 사장은 “홀푸드마켓 매장 중 캘리포니아, 네바다, 하와이 등을 관장하는 남태평양부서에 등록해 이들 지역에서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 코트라(KOTRA)가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시장을 소개하고 어떤 방식으로 개척하면 되는지 알려준 것이다.

판매량은 아직 적은 편이다. 김 사장은 “각 매장에서 매일 소량 팔리는데 판매량이 늘어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희망에 차 있다. 우선 홀푸드마켓에 입점했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다른 매장을 개척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지아쿠아는 과일, 채소뿐 아니라 유아용품이나 주방용품의 살균 세정에도 활용될 수 있어 이런 쪽으로 마케팅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작년 3월 공동대표로 취임한 그는 홀푸드마켓 입점을 계기로 적극적인 판촉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미 국내엔 친환경 프리미엄마켓인 올가홀푸드를 비롯,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AK플라자에 입점했다.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생산(케이터링)업체에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앞으로 해외 시장개척에 더 나설 생각이다. 날씨가 무더워 방부제를 많이 사용하는 방글라데시에 이미 수출을 시작했다. 중국시장 개척도 추진하고 있다.

김 사장은 “우선 중국 내에서 소득 수준이 높은 상하이를 겨냥하고 있으며, 점차 대상지역을 넓혀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눈은 거대한 미국과 중국 시장을 향하고 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