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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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를 한 번에 벗어날 수 있는 마법은 없습니다. 연금 개혁과 지방정부 개혁 등 구조 개혁이 선행돼야 합니다.”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총리(사진)는 “개혁엔 언제나 저항이 따르고 본인에게 영향을 준다고 여겨지면 저항 강도는 더 세진다”며 일부 반대가 있더라도 필요한 개혁은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투브 총리는 한국과 핀란드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19일부터 나흘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핀란드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하던 노키아 덕에 2008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달러를 훌쩍 넘었다. 하지만 전체 GDP의 4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는 핀란드 경제는 스마트폰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노키아의 몰락과 함께 2009년부터 위기에 빠졌다.

핀란드는 위기 극복을 위해 구조 개혁에 착수했다. 지난 9월엔 연금수급 연령을 만 63세에서 2027년까지 만 65세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핀란드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10년에 한 번씩 노사정(勞使政) ‘삼자협의체’를 구성해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데 이번엔 개혁 폭이 평소보다 컸다”고 설명했다.

핀란드의 연금 개혁 방법은 독특하다. 10년마다 정례적으로 이뤄지며 삼자협의체에서 1년~1년6개월 정도 협상을 진행해 합의안을 도출한다. 기대수명이 두 살 늘어나면 연금수령 나이를 한 살 올리는 ‘2+1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스투브 총리는 “1880년 첫 연금 제도가 나왔을 땐 기대수명이 59세였지만 지금은 80세가 넘는다”며 “기대수명이 올라갈수록 더 오래 일하고 연금은 나중에 받아야 복지체제가 지속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핀란드 정부는 또 재정 적자가 유럽연합(EU)이 정한 GDP 대비 3%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자 올해 예산을 삭감하고, 정부 자산도 매각했다.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도 사실상 동결했다. 스투브 총리는 “삼자협의체에서 임금 상승률을 0.4%로 합의했다”며 “위기상황에서 어려움을 나눠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스투브 총리는 한국의 복지 개혁에 대해 “정답은 없다”며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의 경우 기회 균등, 교육, 일자리 창출, 의료 서비스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 복지 정책을 결정한다”며 “이들 사이에 균형이 맞아야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의 핀란드 투자를 기대한다고도 말했다. 스투브 총리는 “핀란드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돼 있고 전 세계 시장의 25%를 차지하는 EU라는 거대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이기도 하 다”며 “성실하고 교육을 잘 받은 노동력도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에 우호적인 정서도 긍정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핀란드는 상위 25대 기업의 수출량이 전체 수출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대기업 의존도가 높지만 ‘반기업 정서’라는 말은 없다”며 “해외로 진출하는 대기업에 자부심을 느끼고, 국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을 위해 힘쓰는 중소기업 또한 존경한다”고 말했다.

스투브 총리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규제도 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인세를 26%에서 20%로 낮추고 사업을 위해 핀란드를 찾는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비자 발급 등의 절차를 간소화할 계획이다.

■ 만능스포츠맨…46세 총리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총리(46)는 유럽연합(EU) 행정조직과 유럽의회에서 주요 경력을 쌓은 유럽 정책 전문가다. 미국 퍼먼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후 벨기에 유럽대 인문학 석사와 런던대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 36세의 나이에 유럽의회 의원이 됐고, 이를 기반으로 2008년 핀란드 외무장관이 됐다. 2011년 유럽무역부 장관을 지냈으며, 지난 6월 핀란드 총리에 임명됐다. 마라톤과 철인 3종경기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