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좀비 국회' 국민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나
요즘 들어 가장 많이 들리는 경제 용어 중의 하나가 ‘골든 타임’이다.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본래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감에서 탄생한 단어다. 남아 있는 골든 타임을 잘 활용하기 위한 핵심 과제는 ‘정책 시차’를 줄이는 일이다.

정책 시차는 당면한 경제 현안을 해결하려는 의도로 추진한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현안을 인식한 뒤 수단을 확정하기까지를 ‘내부 시차’, 확정된 정책 수단을 집행해 수용층이 반응하기까지를 ‘외부 시차’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를 행정 시차, 후자를 집행 시차로 부르기도 한다.

정책 추진 절차만 놓고 보면 국회 동의나 별도의 입법이 필요한 재정 정책은 내부 시차가 길다. 특히 한국처럼 당리당략적인 정치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이 강한 국가일수록 장기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정치 포퓰리즘이 강하더라도 국민 편향적이라면 의외로 짧다. 하지만 정책이 일단 확정되면 곧바로 추진되기 때문에 외부 시차는 짧은 것이 일반적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좀비 국회' 국민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나
통화정책은 그 반대다. 특별한 사전 절차가 없는 통화정책은 내부 시차가 짧다. 한국은 예외다. 현안 인식이 늦거나 예측을 잘못해 내부 시차가 예상보다 길다는 비판이 많다. 한국은행의 예측력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낮다.

하지만 확정된 통화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달 경로, 즉 금융완화 정책일 경우 ‘통화량 증가→금리 인하→총수요 증가→성장률 제고’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외부 시차가 길다. 전달 경로상 금리 인하에 따른 총수요 탄력성도 달라 정책효과 역시 불확실하다.

최근처럼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고 경제주체의 심리 요인이 중시될 때 정책 시차를 줄이는 것은 경제정책의 생명과도 같다. 경제 현안을 조기에 인식해 정책을 아무리 잘 수립했다 하더라도 시차가 길어지면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책 무력화 명제(policy ineffectiveness thesis)’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신흥국 가릴 것 없이 정책 시차부터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일본, 유럽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를 살리는 데는 여야가 없다. 정부와 중앙은행 간 공조도 잘 유지된다. 국민 편에 다가가고 적극적인 협조를 구해 나가는 정책도 눈에 띈다. 이에 반해 재정정책, 통화정책 모두 시차가 가장 긴 국가가 한국이다.

정책 시차는 경제 발전 단계가 높아지고 사회가 다원화할수록 줄이기 어렵다. 경제 범위가 확대돼 글로벌화될수록 길어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정책 공급층과 수용층 간 의사소통이 빨라지면 정책 시차를 단축시킬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짧아지지는 않는다. 한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뉴 노멀’이란 신조어가 붙을 정도로 정책 추진 여건이 변한 요즘 같은 시대에 정책 시차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안은 ‘프로보노 퍼블리코(공익을 위하여) 정신’과 ‘도덕적 설득’이다. 당리당략과 이해관계에 상관없이 대승적 차원에서 경제 살리기에 나선다면 재정정책에서 내부 시차, 통화정책에서 외부 시차를 줄일 수 있다. 부족하면 상대방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구해 보완하면 된다.

시차를 줄이는 또 다른 방법은 같은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전보다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쇼트 스텝’ 방식으로 추진하다 보면 여야의 당리당략과 각 계층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빅 스텝’ 방식으로 추진해야 경제 현안의 심각성을 부각시키면서 신속하게 정책을 수립하고 정책 수용층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다.

국민이 제자리(갑의 위치)를 찾는 것도 정책 시차를 줄이는 좋은 대안이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투표’로, 각층과 단체의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면 ‘국민여론’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 편에서 정책 시차를 줄이는 가장 나쁜 행위는 ‘어떻게 되겠지, 내가 뭘…’ 하면서 방관하는 일이다.

남아 있는 골든 타임이 없다고 하니 역설적으로 한국 경제 비관론이 쏟아지고 수많은 정책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정책 시차가 길어져 대안이 확정되지 못하거나, 마련되더라도 적기를 놓칠 경우 한국 경제는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콩의 한 경제전문 기자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국민 모두를 패배자로 만들고 있다”고 한 말이 오랫동안 귓전에 맴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에 하나 시차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골든 타임을 놓친다면 모두 패배자가 된다. 일부에서 야당은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있으나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이달 초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이 금융위기를 잘 극복하고도 국민에게 인정받지 못해 하원에 이어 상원, 주지사까지 공화당에 내주는 참패를 기록한 것이 좋은 본보기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