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첫걸음도 못뗀 결제 인프라 개선
“신용카드 결제 환경이 휴대폰 제조사나 통신사, 은행, 카드사 등에 좌지우지돼서는 안 됩니다.”

지난 18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난 소네르 잔코 BKM 회장은 “소비자가 편한 결제 환경을 만드는 게 터키 카드산업의 유일한 목표”라며 이같이 말했다. BKM은 터키 은행 간 카드센터로 터키 카드산업을 총괄하고 있다.

신용카드 결제 인프라를 확충하려는 터키 카드업계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 이미 2007년 말 마그네틱(MS) 단말기에서 보안이 뛰어난 직접회로(IC) 단말기로 전환했다. 비접촉식 결제(NFC) 방식을 도입하는 등 결제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잔코 회장이 “터키에서 애플페이를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다. 애플페이나 뱅크웰렛 카카오를 오프라인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NFC 단말기가 가맹점에 설치돼 있어야 한다.

터키 신용카드 산업이 ‘보안성’과 ‘편의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국내의 카드 결제 인프라 개선 작업은 제자리걸음이다. IC단말기 전환기금 1000억원을 조성하기로 합의하고도, 연내 시작하겠다던 IC단말기 전환 사업은 감감무소식이다.

대형가맹점 측은 “수억원의 비용을 들여 단말기를 교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불만이다. 이렇다 보니 단말기 전환 사업 초기에 NFC 등 차세대 결제 수단을 함께 구축하자는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IC단말기 전환만 해도 벅차다는 이유지만, 이면에는 NFC 기반의 결제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일부 카드사에만 유리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다음카카오, 애플 등 정보기술(IT) 업체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결제 인프라를 한 번에 구축해야 사회적 비용이 줄어드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결제 인프라 구축을 놓고 이해관계자들이 제각각 주판알만 튕기고 있어서다. 그러는 동안 국내 카드 사용자들은 터키보다 안전성과 편의성이 모두 뒤처진 결제 인프라를 이용하는 데 만족해야 할 듯하다.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