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윤종규와 하영구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과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

최근 금융계 화제의 주인공이다. 윤 회장은 지난 21일 회장에 취임했다. 하 전 행장은 ‘별일’ 없으면 이번주 전국은행연합회장에 선임될 예정이다. 일가(一家)를 이룬 두 사람이지만 살아온 이력은 사뭇 다르다. 윤 회장은 광주상고 출신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공인회계사 시험과 행정고시(결국 임용되지 못했지만)에 합격하는 등 자수성가한 사람의 전형을 보여줬다. 하 전 행장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대한민국 사회의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씨티은행에 들어갔다. 은행장만 14년 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두 사람은 KB금융 회장 자리를 두고 맞붙었다. 상당수 사람들은 ‘KS학연’을 가진 하 전 행장의 승리를 점쳤다. 30억원에 육박하는 연봉을 받는 씨티은행장직까지 버렸으니 더욱 그랬다. 결과는 아니었다. 학력도 신통치 않고 빽도 없는 윤 회장의 승리였다. 내부 출신 회장에 대한 직원들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외부압력에도 소신 지킬까

그렇다고 해도 윤 회장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은 금융당국 및 정치권과의 관계가 문제다. 금융당국은 그가 취임하기도 전에 KB금융의 LIG손보 인수에 부정적 시각을 전달했다. 지배구조 등을 문제 삼았지만, 윤 회장에 대한 ‘군기 잡기’ 의지가 내포돼 있다는 게 말 많은 사람들의 해석이다.

정치권의 인사 청탁은 더 큰 실험대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인사청탁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후문이다. 윤 회장은 취임사에서 “더 이상 청탁으로 인사를 해결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천명했지만, 과연 끝까지 이 소신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이리저리 갈라진 내부 조직을 통합하는 것도 숙제다. 만일 그의 리더십에 흠결이 생길 일을 자초한다면 그에 대한 직원들의 기대는 하루아침에 ‘내부 출신도 안되는구나’라는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음 KB금융 회장은 또다시 힘 있는 외부 인사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한국 금융산업이 다시 한 번 후퇴하는 건 물론이다. KB금융뿐만 아니라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가 그에게 달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절차의 정당성 시비 벗어날까

하 전 행장은 24일 열리는 은행연합회 이사회와 28일로 예정된 총회를 우선 통과해야 한다. “이사회 멤버인 은행장들이 알지도 못한 채 (금융당국이) 회장에 내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반발하는 노조를 감안하면 시기는 다소 늦춰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내정 사실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은행업은 규제산업”이라거나,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느냐”는 말로 금융당국의 뜻을 따르겠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은행장들의 발언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관심은 그 다음이다. 그가 회장직을 잘 수행하면 ‘절차의 정당성’ 운운은 금방 잊혀질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 금융당국 앞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어정쩡한 모습을 보인다면, 아예 은행연합회장 자리를 다시 관료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서로 다른 이력을 가진 윤 회장과 하 전 행장은 금융산업 발전과 후퇴를 가름할 시험대에 섰다는 아주 중요한 공통점을 갖게 됐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