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문화적 리더십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불신하는 집단 1위로 정치인이 꼽혔다. 무려 응답자의 85.3%다. 이뿐만 아니다. 한 결혼정보 업체에서는 결혼적령기 여성을 대상으로 미래 남편 최악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79.1%가 정치인을 꼽았다고 한다. 정치불신을 넘어 정치혐오 사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정치혐오 사회가 된 데는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싸우기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다. 과거, 권력은 정보에서 나왔다.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가 권력의 척도였고 정치인을 중심으로 더 많은 정보가 모였다. 따라서 ‘나를 따르라’ 식의 정치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계 없이 정보가 공유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정보이용 능력은 젊은 세대가 더욱 탁월하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새로운 정보와 정책을 제시하기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높은 곳에 앉아 폭우 속 제방의 넘치는 물을 보고 “홍수가 난다”고 외치며 사람들에게 둑을 쌓고 물길을 내게 하는 것이 정보를 가진 정치인의 책무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제방에 물이 얼마나 찼는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책무는 달라져야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각자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는 것, 바로 대중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아직도 ‘나를 따르라’ 식의 정치를 구사하려 한다.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된다. 제왕적 리더십이 아닌 공감과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바로 문화적 리더십이다. 정치인들은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싸움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의 세계에서 틀림이란 없다. 다름이 있을 뿐이다. 다름이 조화롭게 재창조돼 문화와 예술을 완성하는 것이다.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가 한데 모이면 소음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소리의 다름을 조화롭게 지휘하면 아름다운 협주를 하는 오케스트라가 된다. 정치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다름을 인정하고 공감하며 소통한다면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며 문화적 리더십이다.

정병국 < 새누리당 의원 withb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