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엑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기자에게 이 차는 각별하다. 가족의 첫 차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집 대문 앞에 서 있던 비둘기색 엑셀을 처음 마주한 기억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수동기어를 조작하는 아버지의 손놀림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어린 시절 차만 타면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멀미장군이었지만, 그래도 엑셀을 타고 나들이 가는 날에는 주저 없이 외투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물론 붙이는 멀미약 기미테와 멀미용 봉투도 챙겼다. 엑셀은 3년 넘게 우리 가족의 발이 됐다. 다른 이들에겐 그저 차일 수 있지만, 우리 가족에겐 소중한 추억인 것이다.
기자의 이름으로 차량등록증이 발부된 공식적인 첫 차는 1991년식 메르세데스 벤츠 190E다. 2012년 이맘때쯤 구매했으니 2년째 함께하고 있다. 190E는 벤츠의 첫 콤팩트 세단이다. 23년 전 출시됐지만 4단 자동변속기와 전자식 윈도 버튼, ABS(미끄럼 방지 장치) 등 첨단 편의·안전사양이 대거 적용됐다.
클래식카에 매료된 후 고민 끝에 구매를 결정했고,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운행하고 있다. 이 차를 유지하고 보수하며 자동차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190E는 멋진 각(角)을 가진 기자의 첫 차다. 앞으로도 놀라운 내구성, 정숙성으로 출퇴근길을 책임진 든든한 친구로 기억될 것이다.
국내에는 아직 클래식카보다는 오래된 차, 낡은 차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클래식카 애호가가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된 인터넷 동호회 규모도 커지고 있다. 올해 2회째를 맞은 SK엔카의 ‘클래식카 페스티벌’이 지난 10월 열린 것이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신이 직접 소유했던 차가 아닐지라도 멋진 경험을 함께한 차들은 잊혀지지 않는다. 기자는 지난 몇 년간 자동차와 관련된 국내외 행사를 통해 다양한 차량이 갖고 있던 잠재력을 한껏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영국의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레인지로버를 타고 모로코의 사막을 내달렸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고성능 스포츠쿠페 SL63 AMG를 타고 프랑스 남부 해안가를 여행하기도 했다. 지난달 강원 평창에서 열린 ‘지프 캠프’에선 ‘SUV의 아버지’이자 발군의 실력을 가진 오프로더인 지프 루비콘 랭글러의 험로 주행 능력을 실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페르디난트 피에히 폭스바겐그룹 이사회 의장과 디터 체체 다임러그룹 회장을 비롯해 볼프강 포르쉐 포르쉐AG 의장, 마틴 빈터콘 폭스바겐그룹 회장,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부회장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들은 한목소리로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임을 강조했다.
생명 없는 기계에 불과하지만 차를 운전하는 사람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카라이프(car life)는 우리의 생활문화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현대자동차 모터스튜디오와 BMW드라이빙센터 등 자동차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설이 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자동차는 떠나도 추억은 남는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