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캘리포니아T , '터보 심장'의 힘…3.6초만에 시속 100㎞
명품의 매력 중 하나는 고집이다. 페라리는 두 가지를 바꾸지 않았다. 연간 생산량을 7000대가량으로 제한했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덕분에 돈 있어도 못 타는 차가 됐고 정통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그렇다고 페라리가 시대 변화를 외면한 건 아니다. 기술 발전이 있으면 과감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엔진 크기를 줄이는 다운사이징 흐름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과거에 버렸던 터보 엔진을 부활시켰다. 첫 시작이 캘리포니아 T였다.

페라리는 1987년 F40 이후 27년 만에 터보엔진을 캘리포니아 T에 적용했다. 자연흡기 엔진으로는 더 이상의 출력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날로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적응하려는 의도도 있다. 엔진 배기량을 낮춰 연비를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포석이다.

27년 만의 변화는 떨리는 일이다. 하루아침에 심장을 바꿔 달았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 T는 이런 의구심을 단박에 떨쳐버렸다. 기존 8기통 4.3L 자연흡기 엔진에서 8기통 3.8L 트윈터보 엔진으로 대체됐지만 모든 성능이 좋아졌다.

출력은 70마력 늘어난 560마력이 됐고 최대 토크 또한 49%나 향상된 77kg·m가 됐다.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4초 제로백의 벽도 깼다. 캘리포니아 T가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전 엔진보다 0.4초 빨라진 3.6초다. 최고 시속도 316㎞로 약 6㎞ 늘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마력당 20% 절감됐고 연비는 15% 이상 개선됐다. 페라리는 “두 개의 터보 차저로 어떤 상태에서든 고른 토크를 낸다”며 “터보 엔진의 취약점인 터보랙 현상을 없애 자연흡기 엔진 못지않은 즉각적인 응답성을 자랑한다”고 설명한다.

생김새도 달라졌다. 기존 캘리포니아가 곡선 위주의 형태였다면 캘리포니아 T는 F12 베를리네타와 비슷한 직선의 모습이다. 캘리포니아의 뒷모습이 다소 얌전했다면 캘리포니아 T는 공기배출구 등으로 상당히 날렵해졌다.

유려한 하드톱 지붕의 실루엣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재빨리 변신할 줄 안다. 쿠페에서 오픈카의 스파이더로 바뀌는 데 14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20초 안팎이 걸리는 다른 스포츠카보다 빠른 편이다. 단순히 주말에 고속도로를 달릴 때만 타는 스포츠카가 아니라 매일 탈 수 있는 데일리카의 실용성을 겸비했다. 페라리가 추구하는 ‘일상 속의 페라리’나 ‘스포츠카형 그랜드 투어러’의 면모를 캘리포니아 T가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가격은 낮췄다. 2억7000만원부터 시작한다. 이전 버전인 캘리포니아의 3억5000만원보다 8000만원가량 싸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