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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지는 '유동성 함정'] 배신당한 超저금리…기업들 "불황에 규제 첩첩, 투자할 곳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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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켓인사이트 - 10년 만에 회사채 순상환

    현금 굴릴 데 없고 유보금에 과세 움직임
    회사채 1000억 이상 순상환 하반기만 20여社
    실물경제 활력 실종…일본식 장기불황 조짐
    마켓인사이트 11월25일 오후 3시34분

    기업들이 올해 회사채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보다 빚(회사채)을 갚는 데 쓴 돈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례없는 초저금리로 값싼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지만 기업의 투자 수요는 오히려 줄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이 오래갈 수 있다고 본 기업들이 투자보다는 부채 감축에 나서고 있다”(김상만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부장)는 지적이다.
    [커지는 '유동성 함정'] 배신당한 超저금리…기업들 "불황에 규제 첩첩, 투자할 곳 없다"
    ○회사채 발행 10년 만에 첫 감소

    올해 국내 회사채 발행 잔액은 지난 20일 현재 192조700억원으로 작년 말(194조8840억원)보다 1.4% 줄었다. 발행보다 상환이 많았다는 의미다. 발행 잔액 감소는 2004년(-3.9%) 이후 10년 만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3년 전 연 4.0% 금리에 발행한 50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지난 17일 현금으로 갚았다. 시장 금리가 떨어져 연 2.3%의 금리로 회사채를 다시 발행할 수 있는데도 빚을 갚아버린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하반기 들어서만 GS칼텍스(3000억원), 삼성증권(3000억원), 대우조선해양(3000억원), 현대제철(2000억원), 우리금융지주(1800억원), 현대백화점(1500억원), 기아자동차(1100억원) 등 우량 대기업 20여곳이 새로운 회사채 발행 없이 각각 1000억원 이상의 만기 도래 회사채를 보유 현금으로 상환했다.

    올초 늘어나던 대기업 대출도 최근엔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대기업 대출채권 잔액은 지난 9월 말 현재 178조6000억원으로 6월 이후 4개월간 1조2000억원(0.7%) 감소했다. 올 들어 기준금리가 두 차례 인하된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란 지적이다.

    ○‘부채 다이어트’ 하는 국내 기업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부채 줄이기가 경제 성장 둔화에 따른 기업 경영의 구조적인 변화로 해석하고 있다. 김상만 부장은 “국내 경제가 저성장으로 인해 사실상 디레버리징(부채 감축)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올 들어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한 대기업 재무담당자는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저성장체제가 고착화되는 것 같아 ‘수비형 경영’을 택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최근까지 ‘현금 비축’에 치중한 기업들이 저성장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부채 다이어트’로 전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금 운용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데다 유보금 과세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현금 보유가 부담스러워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한 증권사 법인영업 담당자는 “저금리 탓에 단기금융상품이나 채권에 돈을 묻어둬 봤자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거의 없다”며 “유보금 과세 움직임까지 일고 있어 차라리 빚을 갚는 게 낫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1990년대 일본 닮은꼴”

    일부 전문가는 기업들의 부채 감축 움직임을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일본식 장기불황으로 진입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증권정보 제공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의 설비 투자금액은 지난 2분기 29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6% 줄어 기업들의 위축된 투자심리를 반영했다. 일본의 경우 1992년과 1993년에 10%가 넘는 설비투자 감소율을 나타냈다.

    일본은 1991년 연 6%였던 기준 금리를 낮추기 시작해 1999년에는 0%까지 떨어뜨렸다. 하지만 기업들은 경기 침체에 대응, 설비 투자를 줄이고 잉여 현금으로 차입금을 갚는 데 사용했다. 일본의 금리 인하 정책에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고, 결국 ‘잃어버린 20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박형민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한국 기업들의 자금수요 감소는 급격한 자산가치 하락을 동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과 차이가 있지만 경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태호/하헌형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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