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로펌 ‘킹앤드우드 멜리슨스’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기 직전인 최근 한국에 법률시장 조사를 위한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한국 주요 로펌을 방문 면담하고 양국 기업 간 교역 상황을 체크하는 등 한국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돌아갔다.
[Law&Biz] 변호사 2600명 보유…초대형 中로펌, 한국 몰려온다
미국의 유력 법률전문지 ‘아메리칸 로이어’가 지난 9월 발표한 ‘세계 100대 로펌’에 따르면 킹앤드우드 멜리슨스는 변호사 수 2596명으로 국내 1~7위 로펌 변호사 수를 모두 합한 것과 규모가 비슷하다.

변호사 976명으로 국내 최대 로펌보다 약 300명 많은 ‘중룬 법률사무소’도 킹앤드우드 멜리슨스가 다녀간 직후 한국에 시장조사 대표단을 보냈다. 지금까지 중룬은 본국에서 한국팀을 운영하고 필요할 때마다 한국 로펌과 업무제휴를 맺는 정도였다. 그러나 한·중 FTA 체결을 계기로 더 적극적인 진출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직접 시장조사에 나선 것이다. 변호사 A씨는 “시장조사를 위해 다녀갔다고 확인된 곳은 두 곳이지만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다녀간 곳까지 합하면 훨씬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초대형 중국 로펌이 국내 법률시장에 몰려올 조짐이다. 정부 관계자는 25일 한·중 FTA에 중국 로펌이 한국에 대표사무소를 세울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한국 로펌만 중국에 대표사무소를 세울 수 있었고 중국 로펌은 한국지사 설립이 불가능했는데 한국 정부가 협상에서 이를 완화해준 것이다. 변웅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한국팀을 운영해왔던 중국 로펌은 한국지사 설립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중 FTA로 ‘대표사무소 설립 허용’이라는 규제완화 효과만 생긴 건 아니다. 양국 기업 간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레 로펌 일감도 많아졌다. 최정식 지평 변호사는 “중국 로펌이 한국에 분사무소를 세우지 않아도 한국 로펌과 업무제휴 관계를 확대해 소속 변호사를 한국에 파견할 수 있다”며 “이 방법을 잘 활용하면 직접 진출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용원 세종 변호사는 “두 시간이면 왔다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양국 간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직접 왕래하며 서비스하는 중국 로펌도 다수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로펌의 활발한 한국시장 진출이 국내 로펌에는 적지 않은 위협이 될 전망이다. 아메리칸 로이어가 선정한 세계 100대 로펌에 중국 로펌은 모두 8곳이 포함돼 미국(61곳)과 영국(13곳)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한국은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 곳만 100대 로펌에 포함된 것과 비교된다. 중국 최대 로펌인 ‘타청 법률사무소’의 변호사 수는 3681명으로 한국 로펌 1위부터 20위까지를 모두 합한 것과 비슷하다. 오기형 태평양 변호사는 “중국 로펌이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자신감이 생겨 한국 로펌의 경쟁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당초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중 FTA에 대해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내 한국 로펌이 중국 로펌과 합작할 수 있도록 중국 측이 양허했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합작로펌 설립이 가능해졌다’고 법조계에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합작로펌 설립 허용은 한·중 FTA 합의안에 담기지 않았고 다만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내 한국 로펌이 중국 로펌과 함께 중국 전역에서 일감을 공동 수임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로펌도 자유무역지대 내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규정이 명확지 않아 추가 협상이 필요하다고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