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경기 시흥 배곧신도시에 2018년 개교를 목표로 추진 중인 시흥캠퍼스를 놓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시흥시와 지난 13일까지 체결하기로 했던 실시협약이 내년으로 미뤄진 뒤 캠퍼스 조성에 대한 뚜렷한 계획 없이 부동산시장에 끌려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학내외에서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 24일에는 서울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가 “부동산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 시흥캠퍼스 건립 사업은 재고돼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꼬이는 시흥캠퍼스…딜레마 빠진 서울대
시흥캠퍼스 사업은 서울대와 시흥시가 2009년 ‘국제캠퍼스 및 교육의료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사업자 선정 등의 과정을 거쳐 (주)한라가 배곧신도시에 아파트 6700가구를 분양해 얻은 수익금 4500억원으로 캠퍼스 기초시설을 지어 서울대에 무상 제공하는 방식의 사업구조가 만들어졌다. 지난 3월엔 양측이 ‘서울대 지역특성화사업을 위한 3차 부속합의서’를 통해 8개월 내에 실시협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실시협약 체결이 갑자기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서울대가 시흥캠퍼스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서울대 내부에선 시흥캠퍼스에 어떤 교육연구시설을 넣을지에 대한 학내 구성원 간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시협약 체결이 연기된 배경이다.

당초 시흥캠퍼스는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와 같은 기숙형 학교(RC)로 추진됐다. 그런데 학내의 반대 여론에 밀려 지난해 RC가 무산되면서 계획이 꼬이기 시작했다.

‘교육의료클러스터’의 핵심인 서울대병원 신설도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시흥시는 배곧신도시의 자족기능 강화를 위해 RC와 더불어 500병상 규모의 서울대병원이 들어서길 강하게 원하고 있지만, 서울대와 별개의 독립법인인 서울대병원 측은 병원 신설에 부정적이다. 작년에만 190여억원의 적자를 냈는데, 시흥에 대규모 병원을 지으면 적자 폭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흥캠퍼스 신설에 대한 부정적인 학내 기류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서울대 유치를 전제로 수년간 대규모 아파트 분양이 이뤄진 터라 계획이 대폭 변경되면 투자자 피해 등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서울대가 무상으로 받을 66만㎡의 부지와 개발이익 지원금 4500억원도 포기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최근에는 시흥캠퍼스 인접 부지에서 한라건설이 1차로 2671가구를 분양해 1.26 대 1의 평균 경쟁률로 순위 내 청약이 마감됐다. 초기 계약률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흥캠퍼스 효과가 분양시장에 훈풍을 불어넣은 결과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시협약 연기에도 시흥시와 한라는 “서울대가 2018년에 개교한다는 일정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울대 캠퍼스와 6700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 한라는 지난 5월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 답사를 다녀오는 등 이번 사업에 회사의 명운을 걸고 있다. 시흥시 또한 김윤식 시장이 서울대 유치를 내걸고 재선된 만큼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결국 시흥캠퍼스의 성공적인 개교는 서울대병원 유치와 ‘연구개발특구’ 지정 등 정부의 지원 여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시흥시 관계자는 “열악한 거주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나선 만큼 서울대 캠퍼스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