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는 원래 중국 과일…1904년 뉴질랜드서 도입, 그린키위 헤이워드종 탄생
100% 농가 소유 기업, 전 세계 유통량의 30% 차지
달고 맛있는 키위 농가에 최대 50% 인센티브
가격 40% 저렴한 칠레산에 오직 품질로 맞설 것
1%…전체 과일시장서 키위가 차지하는 비율
290명…제스프리 직원 수
15년…골드키위 개발 기간
원예학자 헤이워드 라이트는 20년간 시험 재배를 한 뒤 1924년 지금의 그린키위인 ‘헤이워드종’을 개발했다. 이후 30년 넘게 공을 들여 품질을 개량해 열매 크기는 키우고 당도는 높였다. 1950년대 뉴질랜드 농부들은 헤이워드 그린 키위를 영국, 미국 등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1962년 뉴질랜드 정부는 이 과일에 뉴질랜드 원주민을 뜻하는 단어이자 뉴질랜드 국조를 가리키는 ‘키위(kiwi)’라고 이름 붙였다.
키위는 현재 뉴질랜드에서 단일 원예 수출품으로 가장 규모가 큰 작물이다. 세계 키위 유통량의 30%를 차지하고 남반구 출하시기(4~11월)에는 70%까지 점유하고 있다. 이 중 키위 하나로 세계 50개국에서 연 16억뉴질랜드달러(약 1조5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뉴질랜드 국민기업이 있다. 2700여명의 뉴질랜드 키위 재배농가가 100% 소유한 기업 ‘제스프리’다.
○2700여명 키위 농부 뭉친 ‘기업형 조합’
제스프리는 키위 농가가 모두 주주로 참여하는 ‘기업형 조합’이다. 현재 키위를 재배하고 있거나 과거 키위를 재배할 당시 주주가 된 농가로만 이뤄져 있다.
키위의 시작은 중국이었지만 키위가 자라기 가장 적합한 곳은 뉴질랜드 북섬 타우랑가의 ‘베이 오브 플렌티’ 지역이다. 이곳은 미네랄이 풍부한 화산 흙으로 덮여 있고 일조량은 많으면서 밤에는 선선하다. 지금도 뉴질랜드 키위의 80%가 이곳에서 재배된다.
뉴질랜드 정부는 1980년대 농업과 축산업 보조금이 오히려 농민들의 자생력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20~30년간 유지해온 보조금을 전면 철폐했다. 고사 위기에 놓인 키위 농가는 자발적으로 ‘뉴질랜드 키위 마케팅 보드’라는 기업형 조합을 설립했다. 1997년에는 내수보다 수출에 집중하는 ‘제스프리’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레인 제이거 제스프리 인터내셔널 대표는 “제스프리는 농가의 안정된 수입 보장과 소비자 만족을 양대 목표로 삼고 있다”며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을 통한 ‘혁신’이 성공의 키워드”라고 전했다.
○과일 시장의 1%…거대한 성장잠재력
키위는 전체 과일 시장에서 1%를 차지하고 있다. 사과나 오렌지, 바나나 등에 비하면 신생 과일이다. 제스프리는 이를 ‘성장 가능성’으로 해석했다. 제스프리는 그린키위 외에도 지금까지 세 개 이상의 품종을 개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다른 과일로 한눈 팔지 않고 오직 하나의 과일을 여러 품종으로 개발하는 뚝심을 보였다.
뉴질랜드 원예작물연구소 플랜트앤드푸드와 손잡고 차세대 품종 개발에 집중한 게 핵심 성장동력이 됐다. 제스프리는 해마다 1000만뉴질랜드달러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생산성을 높이고 저장성을 높이는 등 개량 작업을 연구소가 전담하는 형태다. 1985년부터 15년에 걸친 품종 개발 끝에 나온 건 노란색 ‘골드키위’. 1만5000개 이상 종자를 접목하는 실험 끝에 나온 이 품종은 그린키위보다 단맛은 훨씬 강하고 엽산 등 영양소는 더 풍부하다. 골드키위는 값싼 칠레산과 유럽산 키위에 대항해 여전히 ‘뉴질랜드=키위의 나라’라는 것을 검증한 ‘효자 상품’이 됐다. 제스프리는 골드키위가 시장에서 몸값이 한창 높아지던 2000년에도 R&D를 이어갔다. 12년에 걸쳐 개발한 선골드 품종과 스위트그린 품종을 올해 추가로 출시했다.
○품종 개발에 평균 10년…‘혁신’이 답
제스프리는 농가, 소매생산, 유통이 모두 통합돼 있다. 제스프리인터내셔널은 현재 유럽, 일본, 한국, 대만, 북미에 지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직원은 290명뿐이다. 농가나 포장회사는 본사 소유가 아니다. 대신 농민들이 생산한 키위를 판매한 대가로 받는 판매 수수료로 회사를 운영한다. 대표 역시 농가에서 추천한 이사 5명과 외부인사 3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선출한다. 임기는 없다. 직원 모두가 뉴질랜드 키위 농가를 위해 고용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제스프리는 키위를 사계절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남반구인 뉴질랜드와 정반대인 북반구 재배지에서 키위를 생산 중이다. 제스프리는 미국, 유럽에 이어 한국의 제주에서 2004년부터 골드키위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2007년 첫 출하에 성공했다. 현재 제주 150여개 농가에서 골드키위를 생산 중이다. 이를 통해 5월에서 11월까지 남반구인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키위를 한국에 공급하고, 12월에서 4월까지는 제주에서 재배한 골드키위를 공급한다. 단 한국산 참다래종과의 상생을 해치지 않기 위해 그린 키위는 재배, 수입하지 않는다.
최근 제스프리의 최대 위협은 칠레산 저가 키위다. 인건비와 땅값이 싼 칠레에서 재배되는 키위는 뉴질랜드산보다 가격이 40%가량 저렴하다. 국내에 들어오는 칠레 키위는 자유무역협정(FTA)에 의해 무관세인 반면 뉴질랜드 키위는 관세가 45%나 붙는다. 제스프리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철학을 관철하고 있다.
○농가에 최대 50% 인센티브…경쟁 유도
제스프리 키위의 가장 큰 경쟁력은 높은 당도다. 그 비결에는 제스프리 측이 농가에 지급하는 인센티브 제도가 있다. 제스프리는 보다 달고 맛있는 키위를 생산한 재배 농가에 최대 50%까지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재배 농가 간에 상호 경쟁을 유도하는 성과 제도를 통해 품질 향상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농가들은 수확 이전에 원예작물 컨설팅 연구소인 아그퍼스트에 90개의 샘플을 보낸다. 이곳에서 당도를 예측할 수 있는 브릭스, 건물량(수분을 제거한 뒤 남은 양의 비율) 테스트를 통해 일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제스프리에 키위를 공급할 수 없다. 골드키위 기준으로 1등급 키위는 당도 최소 8브릭스, 건물량 16.2% 이상을 넘어야 한다. 1등급 키위를 결정하는 건 당도뿐만이 아니다. 최종 포장 단계에서도 모양과 크기, 표면의 흠집 등을 육안으로 직접 살펴 미달하는 것을 골라낸 뒤 수출용 상자에 담는다. 1등급은 아시아와 유럽, 2등급은 호주와 북미시장에 수출하고 나머지 3등급은 내수시장에서 판매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