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원규 "30여년 '사장 마인드'로 일하니 결국 증권사 사장이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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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규 NH투자증권 사장 내정자
"高2때 호적 고쳐 사환으로 입사…35세엔 최연소 지점장"
"高2때 호적 고쳐 사환으로 입사…35세엔 최연소 지점장"
‘깡’으로 승부한 깡촌 출신 청년
낮엔 증권사 사환 밤엔 상고 다녀
1년3개월간 바닥에 눕지않고 공부
각기병 걸릴 정도로 독하게 했죠
단료투천(簞료投川)의 자세로
강물에 술 풀어 부하들과 나눠마신
옛 장수처럼 임직원들과 함께
통합 증권사 정착 위해 힘쓸 것
올해 말(12월31일)에 새로운 증권사가 선을 보인다.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이 통합한 NH투자증권이다. 자기자본만 4조4000억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초대 수장으로 내정된 이는 김원규 우리투자증권 사장(54). 우리투자증권의 전신인 LG증권부터 따져 평사원에서 사장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밤에는 상업고등학교 야간부에서 공부하고, 낮엔 증권회사 객장에서 시세판에 분필로 주가를 적어 넣는 일을 하던 고학생의 “조용한 그러나 치열했던 삶”의 결과물이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있는 ‘여의도 안동국시’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그가 20년 넘게 드나드는 곳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 밀가루라도 먹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올 때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게 국시(국수의 경상도 사투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초심을 다지게 하는 음식”이다. 칼국수를 한 젓가락씩 들며 그는 역경과 싸워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돈 벌기 위해 나이 고친 야간 상고생
김 사장이 졸업한 초·중학교는 모두 폐교됐다. 그가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나고 자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변두리는 ‘깡촌 중의 깡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전기가 들어왔다”고 그는 회상했다. 부친이 당시로서는 벤처산업인 탄광업을 하면서 아주 어릴 땐 넉넉하게 살았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가세가 갑자기 기울었다. 풍류를 즐기던 부친은 돈을 쉽게 썼고, 그 와중에 탄광 사고가 나면서 손해배상을 해주느라 빈털터리가 됐다. 김 사장은 “아버지께서 일찍 ‘OECD’에 가입하시면서 식구들이 고생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OECD’란 내기 골프를 하면서 초반에 승리를 많이 해 동반자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적용받는 게임 규칙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 때문인지 목소리가 가라앉을 때 음식이 상에 올라왔다. 육즙을 잘 살려 쪄낸 수육과 동태, 허파, 고추를 알맞게 잘라 기름에 부친 모둠전 등 여의도 안동국시의 대표 음식이다. 개운한 육수와 동태전의 고소한 맛에 이끌려 단골이 된 사람이 많다는 게 김 사장의 귀띔이다.
김 사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동태전을 집어 들며 갑자기 “고등학교 다닐 때 나이를 한 살 고쳤다”고 말했다. 대구상고 야간에 들어간 것은 집안 형편상 낮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생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동네 어른의 힘을 빌려 호적을 고쳤다. 태어난 해를 1961년에서 1960년으로 바꿨다. 이런 과정을 거쳐 취업한 곳이 삼보증권(1982년 대우증권에 흡수합병됐다) 대구지점이었다. 종목별로 주가가 바뀔 때마다 분필로 시세판에 적어 넣다가 시간이 되면 학교로 가고는 했다.
방바닥에 눕지 않았던 1년3개월
누나가 공무원으로 취직하면서 살림이 조금 나아지자 그는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김 사장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이듬해 예비고사를 보는 11월까지 1년3개월간 하루도 방바닥에서 잠을 잔 적이 없다”고 했다. 대부분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이거나 정 힘들면 의자 2개를 이어 놓고 그 위에서 잠시 허리를 폈다. 덕분에 비타민B1 결핍증인 각기병을 얻었다. “편안히 누워 숙면을 취하고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게 정상이죠. 하지만 그때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방바닥에 눕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인문계 학교가 아닌 만큼 남들과 똑같이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 속에 1년여를 보낸 것이다.
얘기가 깊어지는 동안 문어 숙회가 나왔다. 쌉싸름한 문어 숙회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술안주로 그만이다. 포항에서 올라온 문어를 소금 간을 한 뒤 삶아 얇게 썰어냈다. 아삭한 오이와 같이 곁들였더니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수산물이 귀한 안동 지방에서는 귀한 손님이 올 때 내는 음식이다.
불리한 조건을 뒤집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김 사장의 ‘버릇’은 골프에서도 나타났다. 싱글 골퍼인 그의 실력은 30대 초반 대리 시절 완성됐다. 골프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1990년대 초반 얘기다. 경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증권에 입사한 그는 대구에서 대리 시절을 보냈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유지 2세들과 어울렸고, 골프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지역 부유층 자제들이다 보니 모임 멤버들은 평균타수 70대 초중반의 고수들이었다. 내기 골프를 하면 한 달 월급이 날아가기 일쑤였다. 김 사장 입장에서는 살기 위한 골프를 쳐야 했다. 그는 “돈을 잃으면 먹고살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연습하고 실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내가 주인이다. 나를 징계하라”
김 사장은 우리투자증권 최연소 지점장의 주인공이다. 35세에 포항지점을 맡았다. 비결을 물었더니 “어릴 때부터 회사가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게 남다르다면 남다른 점”이라고 답했다. 그는 동대구지점에서 근무하던 시절 27세의 나이에 부지점장으로 30여명이 넘는 직원을 데리고 매일 아침 조회를 했다. 젊은 사람이 많다 보니 항상 시끄러웠다. 직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거나 폭행 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청소를 하게 하고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사법권’을 행사했지만 모두 다 군말없이 따랐다. 김 사장은 “스스로 20대 대리라는 직함을 생각하지 않았다”며 “주인처럼 일했더니 다들 나를 주인처럼 생각하더라”고 회상했다.
마지막 음식인 국수가 나왔다. 이 집의 반찬은 김치와 깻잎 무침, 부추 무침 세 가지로 단출하지만 맛이 깔끔했다. 여의도 안동국시는 27년째 홍두깨로 반죽을 밀어서 면발을 뽑고 있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3분의 1가량 섞어 구수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고생담이나 성공담을 물을 때마다 “남들도 다 그랬다”며 쑥스러워하던 김 사장은 주인의식과 책임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유난히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직장생활 중에 단 한 번도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내 회사인데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강조했다.
김 사장이 찬으로 나온 깻잎 무침을 면 위에 얹고 크게 한 입 했다. 안동국시는 고명이 화려하지 않은 대신 찬으로 나온 깻잎이나 부추를 면에 같이 먹는다. 쌉싸름한 깻잎과 부드러운 면이 기분좋게 어울리며 입안을 맴돌았다. 소고기로 우려낸 개운한 국물 맛이 뒷맛을 더했다.
자정 넘어 신입사원들에게 불려나간 전무
퇴직연금사업부와 WM사업부 대표 시절부터 우리투자증권 내에서 그는 대표적인 덕장으로 꼽혔다. 이 때문에 직원들에게도 ‘큰형님’으로 통한다. 전무 시절 1~3년차의 새내기 사원들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전화해 “집 앞으로 갈 테니 술 사달라”고 했던 ‘사건’도 있었다. 웬만한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지만, 잠자리에 들려던 김 사장은 멋쩍게 웃으며 불려나가 새벽까지 어울린 뒤 직원들을 택시 태워 보냈다. 저녁을 먹으러 들른 회사 근처 삼겹살집에서 여러 테이블의 직원들과 어울리다가 83인분을 계산한 적도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취임 당시 자신이 지향하는 최고경영자(CEO)의 자세로 ‘단료투천(簞投川)’을 내세웠다. 장수가 전쟁 중에 적은 양의 술을 하사받았는데, 이를 강물에 풀어 전 부하와 다 같이 마셨다는 고사성어다. “서로 다른 문화의 두 회사 임직원들을 아울러서 통합 증권사를 정착시켜야 하는 게 내 과제입니다. 앞으로 고난도 영화도 반드시 직원들과 함께할 겁니다.”
우리투자증권 사장과 NH투자증권 사장의 자리가 갖는 무게감은 명백하게 다르다. 국내 최대 증권사로서 크게 불어난 자산과 자기자본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김 사장은 NH투자증권이 투자은행(IB)과 트레이딩 부문의 강점을 갖춘 만큼 해볼 만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여기에 농협 네트워크라는 거대한 판매처도 있다. “증권은 주요 도시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PB 쪽 강점이 있습니다. 반면 농협은 지방과 농어촌 쪽에 강하죠. 점포와 인근 농협 조합과의 유대를 강화해 나갈 겁니다.” 해외에서도 얼마나 좋은 상품을 가져오느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김 사장은 스티브 슈워츠만 블랙스톤 회장을 만나는 등 글로벌 운용사들과의 연대 모색에 나서고 있다. ■ 김원규 사장의 단골집 여의도 안동국시
홍두깨로 반죽밀어 면 만드는 전통방식 고수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 사투리로 안동 지방은 예전부터 칼국수가 유명했다. 내륙 지역이다 보니 밀가루에 콩가루를 30~40% 섞고 멸치 대신 고기로 육수를 내는 게 특징이다.
서울 여의도동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맞은 편 고려빌딩 2층에 있는 ‘여의도 안동국시’는 사장인 길상희 여사가 27년 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전국에 많이 퍼져 있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안동국시’와는 다른 곳이다. 여의도 정치권과 증권가 인사 중에는 10년 넘은 단골이 많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재임 시절 점심시간에 자주 찾았는데 항상 입구 옆 자리를 지키고 앉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메뉴는 단출하다. 국시와 메밀묵, 수육, 문어 숙회, 모둠전이 전부다. 반찬도 부추와 김치, 깻잎 등 세 가지를 27년째 고수하고 있다. 국시는 8000원, 다른 음식들은 크기에 따라 8000~3만원이다. 영업시간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30분이며, 토요일은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02)782-1094
■ “책임은 나 하나로 족하다”
지난해 우리투자증권의 LIG 기업어음(CP) 불완전 판매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져 금융감독원이 징계하려 하자 김 사장이 “사업부 대표로서 책임은 내게 있으니 징계 범위를 나로 국한해 달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 임원 중 유일하게 견책을 받았다.
■ 김원규 NH 투자증권 사장 내정자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1979년 대구상고 졸업
△1985년 경북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LG투자증권 입사
△1996년 포항지점 지점장
△2005년 중부지역 본부장
△2007년 연금/신탁영업 상무
△2009년 WM사업부 대표 전무
△2013년 우리투자증권 사장
△2014년 NH투자증권 사장 내정
고경봉/좌동욱 기자 kgb@hankyung.com
낮엔 증권사 사환 밤엔 상고 다녀
1년3개월간 바닥에 눕지않고 공부
각기병 걸릴 정도로 독하게 했죠
단료투천(簞료投川)의 자세로
강물에 술 풀어 부하들과 나눠마신
옛 장수처럼 임직원들과 함께
통합 증권사 정착 위해 힘쓸 것
올해 말(12월31일)에 새로운 증권사가 선을 보인다.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이 통합한 NH투자증권이다. 자기자본만 4조4000억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초대 수장으로 내정된 이는 김원규 우리투자증권 사장(54). 우리투자증권의 전신인 LG증권부터 따져 평사원에서 사장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밤에는 상업고등학교 야간부에서 공부하고, 낮엔 증권회사 객장에서 시세판에 분필로 주가를 적어 넣는 일을 하던 고학생의 “조용한 그러나 치열했던 삶”의 결과물이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있는 ‘여의도 안동국시’에서 김 사장을 만났다. 그가 20년 넘게 드나드는 곳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 밀가루라도 먹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올 때는 쳐다보기도 싫었던 게 국시(국수의 경상도 사투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초심을 다지게 하는 음식”이다. 칼국수를 한 젓가락씩 들며 그는 역경과 싸워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돈 벌기 위해 나이 고친 야간 상고생
김 사장이 졸업한 초·중학교는 모두 폐교됐다. 그가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나고 자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변두리는 ‘깡촌 중의 깡촌’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전기가 들어왔다”고 그는 회상했다. 부친이 당시로서는 벤처산업인 탄광업을 하면서 아주 어릴 땐 넉넉하게 살았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가세가 갑자기 기울었다. 풍류를 즐기던 부친은 돈을 쉽게 썼고, 그 와중에 탄광 사고가 나면서 손해배상을 해주느라 빈털터리가 됐다. 김 사장은 “아버지께서 일찍 ‘OECD’에 가입하시면서 식구들이 고생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OECD’란 내기 골프를 하면서 초반에 승리를 많이 해 동반자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적용받는 게임 규칙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 때문인지 목소리가 가라앉을 때 음식이 상에 올라왔다. 육즙을 잘 살려 쪄낸 수육과 동태, 허파, 고추를 알맞게 잘라 기름에 부친 모둠전 등 여의도 안동국시의 대표 음식이다. 개운한 육수와 동태전의 고소한 맛에 이끌려 단골이 된 사람이 많다는 게 김 사장의 귀띔이다.
김 사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동태전을 집어 들며 갑자기 “고등학교 다닐 때 나이를 한 살 고쳤다”고 말했다. 대구상고 야간에 들어간 것은 집안 형편상 낮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동생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동네 어른의 힘을 빌려 호적을 고쳤다. 태어난 해를 1961년에서 1960년으로 바꿨다. 이런 과정을 거쳐 취업한 곳이 삼보증권(1982년 대우증권에 흡수합병됐다) 대구지점이었다. 종목별로 주가가 바뀔 때마다 분필로 시세판에 적어 넣다가 시간이 되면 학교로 가고는 했다.
방바닥에 눕지 않았던 1년3개월
누나가 공무원으로 취직하면서 살림이 조금 나아지자 그는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김 사장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열심히 살았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부터 이듬해 예비고사를 보는 11월까지 1년3개월간 하루도 방바닥에서 잠을 잔 적이 없다”고 했다. 대부분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이거나 정 힘들면 의자 2개를 이어 놓고 그 위에서 잠시 허리를 폈다. 덕분에 비타민B1 결핍증인 각기병을 얻었다. “편안히 누워 숙면을 취하고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게 정상이죠. 하지만 그때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방바닥에 눕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인문계 학교가 아닌 만큼 남들과 똑같이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 속에 1년여를 보낸 것이다.
얘기가 깊어지는 동안 문어 숙회가 나왔다. 쌉싸름한 문어 숙회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술안주로 그만이다. 포항에서 올라온 문어를 소금 간을 한 뒤 삶아 얇게 썰어냈다. 아삭한 오이와 같이 곁들였더니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수산물이 귀한 안동 지방에서는 귀한 손님이 올 때 내는 음식이다.
불리한 조건을 뒤집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김 사장의 ‘버릇’은 골프에서도 나타났다. 싱글 골퍼인 그의 실력은 30대 초반 대리 시절 완성됐다. 골프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1990년대 초반 얘기다. 경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증권에 입사한 그는 대구에서 대리 시절을 보냈다.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유지 2세들과 어울렸고, 골프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다들 지역 부유층 자제들이다 보니 모임 멤버들은 평균타수 70대 초중반의 고수들이었다. 내기 골프를 하면 한 달 월급이 날아가기 일쑤였다. 김 사장 입장에서는 살기 위한 골프를 쳐야 했다. 그는 “돈을 잃으면 먹고살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열심히 연습하고 실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내가 주인이다. 나를 징계하라”
김 사장은 우리투자증권 최연소 지점장의 주인공이다. 35세에 포항지점을 맡았다. 비결을 물었더니 “어릴 때부터 회사가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게 남다르다면 남다른 점”이라고 답했다. 그는 동대구지점에서 근무하던 시절 27세의 나이에 부지점장으로 30여명이 넘는 직원을 데리고 매일 아침 조회를 했다. 젊은 사람이 많다 보니 항상 시끄러웠다. 직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거나 폭행 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청소를 하게 하고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사법권’을 행사했지만 모두 다 군말없이 따랐다. 김 사장은 “스스로 20대 대리라는 직함을 생각하지 않았다”며 “주인처럼 일했더니 다들 나를 주인처럼 생각하더라”고 회상했다.
마지막 음식인 국수가 나왔다. 이 집의 반찬은 김치와 깻잎 무침, 부추 무침 세 가지로 단출하지만 맛이 깔끔했다. 여의도 안동국시는 27년째 홍두깨로 반죽을 밀어서 면발을 뽑고 있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3분의 1가량 섞어 구수한 맛을 내는 게 특징이다.
고생담이나 성공담을 물을 때마다 “남들도 다 그랬다”며 쑥스러워하던 김 사장은 주인의식과 책임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유난히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직장생활 중에 단 한 번도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내 회사인데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강조했다.
김 사장이 찬으로 나온 깻잎 무침을 면 위에 얹고 크게 한 입 했다. 안동국시는 고명이 화려하지 않은 대신 찬으로 나온 깻잎이나 부추를 면에 같이 먹는다. 쌉싸름한 깻잎과 부드러운 면이 기분좋게 어울리며 입안을 맴돌았다. 소고기로 우려낸 개운한 국물 맛이 뒷맛을 더했다.
자정 넘어 신입사원들에게 불려나간 전무
퇴직연금사업부와 WM사업부 대표 시절부터 우리투자증권 내에서 그는 대표적인 덕장으로 꼽혔다. 이 때문에 직원들에게도 ‘큰형님’으로 통한다. 전무 시절 1~3년차의 새내기 사원들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전화해 “집 앞으로 갈 테니 술 사달라”고 했던 ‘사건’도 있었다. 웬만한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지만, 잠자리에 들려던 김 사장은 멋쩍게 웃으며 불려나가 새벽까지 어울린 뒤 직원들을 택시 태워 보냈다. 저녁을 먹으러 들른 회사 근처 삼겹살집에서 여러 테이블의 직원들과 어울리다가 83인분을 계산한 적도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취임 당시 자신이 지향하는 최고경영자(CEO)의 자세로 ‘단료투천(簞投川)’을 내세웠다. 장수가 전쟁 중에 적은 양의 술을 하사받았는데, 이를 강물에 풀어 전 부하와 다 같이 마셨다는 고사성어다. “서로 다른 문화의 두 회사 임직원들을 아울러서 통합 증권사를 정착시켜야 하는 게 내 과제입니다. 앞으로 고난도 영화도 반드시 직원들과 함께할 겁니다.”
우리투자증권 사장과 NH투자증권 사장의 자리가 갖는 무게감은 명백하게 다르다. 국내 최대 증권사로서 크게 불어난 자산과 자기자본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김 사장은 NH투자증권이 투자은행(IB)과 트레이딩 부문의 강점을 갖춘 만큼 해볼 만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여기에 농협 네트워크라는 거대한 판매처도 있다. “증권은 주요 도시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PB 쪽 강점이 있습니다. 반면 농협은 지방과 농어촌 쪽에 강하죠. 점포와 인근 농협 조합과의 유대를 강화해 나갈 겁니다.” 해외에서도 얼마나 좋은 상품을 가져오느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김 사장은 스티브 슈워츠만 블랙스톤 회장을 만나는 등 글로벌 운용사들과의 연대 모색에 나서고 있다. ■ 김원규 사장의 단골집 여의도 안동국시
홍두깨로 반죽밀어 면 만드는 전통방식 고수
‘국시’는 국수의 경상도 사투리로 안동 지방은 예전부터 칼국수가 유명했다. 내륙 지역이다 보니 밀가루에 콩가루를 30~40% 섞고 멸치 대신 고기로 육수를 내는 게 특징이다.
서울 여의도동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맞은 편 고려빌딩 2층에 있는 ‘여의도 안동국시’는 사장인 길상희 여사가 27년 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전국에 많이 퍼져 있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안동국시’와는 다른 곳이다. 여의도 정치권과 증권가 인사 중에는 10년 넘은 단골이 많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재임 시절 점심시간에 자주 찾았는데 항상 입구 옆 자리를 지키고 앉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메뉴는 단출하다. 국시와 메밀묵, 수육, 문어 숙회, 모둠전이 전부다. 반찬도 부추와 김치, 깻잎 등 세 가지를 27년째 고수하고 있다. 국시는 8000원, 다른 음식들은 크기에 따라 8000~3만원이다. 영업시간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30분이며, 토요일은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02)782-1094
■ “책임은 나 하나로 족하다”
지난해 우리투자증권의 LIG 기업어음(CP) 불완전 판매와 관련한 문제가 불거져 금융감독원이 징계하려 하자 김 사장이 “사업부 대표로서 책임은 내게 있으니 징계 범위를 나로 국한해 달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 임원 중 유일하게 견책을 받았다.
■ 김원규 NH 투자증권 사장 내정자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1979년 대구상고 졸업
△1985년 경북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LG투자증권 입사
△1996년 포항지점 지점장
△2005년 중부지역 본부장
△2007년 연금/신탁영업 상무
△2009년 WM사업부 대표 전무
△2013년 우리투자증권 사장
△2014년 NH투자증권 사장 내정
고경봉/좌동욱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