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마지막 황제국 청나라를 47년간 쥐고 흔든 서태후는 몰락한 관리의 딸로 태어났다. 16세 때 궁녀가 돼 황제의 거처 자금성에 들어갔다. 젊음과 미모를 활용, 황제인 함풍제의 아들을 낳으면서 ‘인생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함풍제가 1861년 31세 나이로 요절하자 아들 동치제가 즉위했다. ‘서태후’란 이름도 이때 붙었다. 황궁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거주하던 정비(동태후)와 함께 수렴청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황제(아들)를 최대의 정적으로 여겨 어떻게든 정치에서 배제하려 했다. 황제가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자 황후마저 자살로 내몰았다. 이후 네 살짜리 조카 광서제를 올리고 수렴청정을 계속했다.

성인이 된 광서제는 청일전쟁을 통해 서태후에게서 벗어나려 했으나 전쟁에서 패한 뒤 입지가 더 좁아졌다. 서태후는 전쟁 중에도 군비를 빼돌려 자신의 처소를 꾸미고 극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광서제는 변법자강운동을 통해 서태후를 다시 한번 제치려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가고 관련 인물은 모두 처형당했다. 서태후의 전횡은 더 심해졌다. 유폐됐던 광서제가 죽자 또 다른 조카의 세 살짜리 아들(마지막 황제 선통제)을 즉위시켰다.

서태후는 1908년 이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망가질 만큼 망가진 청나라는 곧 멸망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자가 정치를 못 하게 하라’였다고 전해진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