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아들)를 최대의 정적으로 여겨 어떻게든 정치에서 배제하려 했다. 황제가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자 황후마저 자살로 내몰았다. 이후 네 살짜리 조카 광서제를 올리고 수렴청정을 계속했다.
성인이 된 광서제는 청일전쟁을 통해 서태후에게서 벗어나려 했으나 전쟁에서 패한 뒤 입지가 더 좁아졌다. 서태후는 전쟁 중에도 군비를 빼돌려 자신의 처소를 꾸미고 극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광서제는 변법자강운동을 통해 서태후를 다시 한번 제치려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가고 관련 인물은 모두 처형당했다. 서태후의 전횡은 더 심해졌다. 유폐됐던 광서제가 죽자 또 다른 조카의 세 살짜리 아들(마지막 황제 선통제)을 즉위시켰다.
서태후는 1908년 이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망가질 만큼 망가진 청나라는 곧 멸망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자가 정치를 못 하게 하라’였다고 전해진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