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前임원 등 4명 무죄
경비 절감한 경영상 판단 인정
과거 무분별한 배임처벌 뒤집어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아현뉴타운 재개발 사업 발주 당시 회삿돈 수억원을 빼돌려 수주 로비를 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업무상 배임 등)로 기소된 대우건설 전 임원 민모씨(62)와 대림산업의 당시 현장 관리부장 이모씨(52) 등 총 4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고 보아 각 무죄를 선고한 것은 정당하고 업무상 배임죄에서 재산상 손해 및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 위법이 없다”고 판결했다.
민씨와 이씨 등 대우건설과 대림산업 관계자들은 2006년 서울 북아현동 아현뉴타운 사업 발주 당시 각각 5억원과 3억원의 법인 자금을 빼돌려 정비 용역업체 대표 김모씨를 통해 전 서대문구청장 A씨에게 전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전 구청장과 용역업체 김씨에게는 뇌물 혐의도 적용됐지만 건설사 관계자들은 뇌물죄 공소시효가 지나 법원은 횡령 배임죄에 대해서만 판단했다.
1, 2심은 전 구청장과 김씨에게는 유죄를 선고했으나 건설사 임직원들은 횡령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우그룹은 2000년대 초반 그룹 해체 사태를 거치면서 기업 이미지가 훼손돼 수주 실적이 매우 저조했으므로 뉴타운 사업 수주가 절실했다”며 “이 사업을 수주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이후부터 많은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로 선정된 것을 감안하면 대우건설에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림산업 측도 사업 수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홍보 비용 등을 절약한 사정 등을 감안해 임직원들을 무죄로 판단했다. 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당시 이들이 자금 보관자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번 확정 판결로 기업인들에 대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배임죄를 적용하던 수사 당국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그동안 검찰은 법인 자금을 빼돌려 사업을 위한 로비에 사용한 경우 뇌물 혐의 외에 횡령과 배임 혐의를 함께 적용해 기소했다.
피고 측을 대리한 류용호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불법 로비는 뇌물이나 배임증재 등 다른 죄로 처벌하면 되는데 그동안 배임죄를 너무 광범위하게 해석해 관행적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불법이 있었더라도 회사를 위한 경영 판단이었고 경비 절감에 도움이 됐다면 배임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