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 8월 중국 내 철도건설을 전담하는 철로총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해외에 나가 중국의 고속철도를 세일즈할 때면 특별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150여년 전 미국의 대륙횡단 철도 건설을 위해 저임금에 땀흘려 일했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이제 전 세계를 달릴 고속철도 차량을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뿌듯함을 내비친 것이다. 중국이 고속철 및 철도 분야에서 굵직굵직한 계약을 잇달아 수주하고 있다. 중국 언론은 ‘고속철 대약진’이란 표현까지 내건다.
중국 고속철 '新실크로드 야심'…반값 앞세워 30개국과 건설 협상중
○세계 고속철 절반이 중국 내 노선

중국은 지난달 나이지리아로부터 120억달러(약 13조3500억원) 규모의 철도건설 계약을 수주했다. 러시아와는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잇는 노선을 건설하는 데 합의했고, 인도의 첫 고속철 사업에도 중국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1978년 개혁개방에 나선 덩샤오핑이 일본을 방문해 처음 고속철(신칸센)을 탄 직후 “어떻게 기차가 바람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느냐”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것에 비춰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에 가까운 변화다. 전문가들은 중국 고속철이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쌓은 기술력, 국가지도자의 세일즈 외교, 가격 경쟁력 등 ‘삼박자’를 갖추고 있어 당분간 중국의 독주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은 고속철 분야에서 후발 주자였다. 첫 고속철 구간인 베이징~톈진 구간이 2008년 개통됐다. 중국 정부의 구상은 4개의 종축과 4개의 횡축으로 고속철을 깔아 국토 전역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것이었다. 2012년 말에는 세계 최장 고속철인 베이징~광저우 노선(2298㎞)을 개통했다. 그 결과 중국의 고속철 총노선은 작년 말 1만1000㎞로 전 세계 고속철 노선의 약 50%를 차지하는 ‘고속철 대국’이 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일본의 가와사키, 독일의 지멘스, 프랑스의 알스톰과 번갈아가며 합작했고 이를 통해 선진 업체의 기술력을 흡수했다. 특히 중국은 고산지대 사막 등 오지에서 고속철을 건설 운영한 경험이 풍부해 오지 건설 등의 분야에선 세계적 기술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12월 개통된 하얼빈~다롄 노선은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달리는 고속철의 첫 시도였다.

○‘新실크로드’ 핵심 인프라 고속철

중국의 경제주간지 차이징은 최근 자국의 고속철 관련 기사에서 “중국 고속철의 해외 진출은 2013년 시진핑(習近平) 정부 출범 전후로 구분될 수 있다”며 “가장 큰 차이점은 시진핑 정부 들어 국가 최고 지도자들이 고속철 세일즈맨으로 적극 뛰고 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시 주석은 지난 9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인도 고속철 건설사업에 향후 5년간 200억달러를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리 총리 역시 태국 영국 러시아 등을 돌며 중국 고속철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두 지도자가 고속철 세일즈에 열성적으로 나서는 것은 물론 경제적 부가가치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이익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은 지난해 9월 ‘신(新)실크로드 경제벨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며 “유럽,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을 아우르는 경제벨트를 건설하는 데 고속철은 필수불가결한 핵심 인프라”라고 분석했다. 이를 위해 현재 인도 등 20~30개 국가와 고속철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원가 경쟁국 대비 절반 수준

올 들어 각국 정부가 발주한 고속철 및 철도 입찰에서 중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핵심 요인은 가격이 싸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은 국제 입찰에서 경쟁국가에 비해 30% 정도 낮은 가격을 써내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고속철 건설 비용은 ㎞당 1억5000만위안(약 270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국인 독일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다. 차이징은 그러나 “터키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완공하는 데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는 등 현지 비즈니스 관행과 법, 제도 등을 잘 알지 못해 해외사업에서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중국이 고속철 대국에서 강국으로 발전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