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거짓말
‘번갯불에 솜 구워 먹겠다’ ‘고양이가 알 낳을 노릇이다’ ‘뜨물 먹고 주정한다’ 등은 거짓말 관련 속담이다. 아예 ‘사내자식 길 나설 때 갈모(우비) 하나 거짓말 하나는 가지고 나서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재치있는 말로 횡액을 면하기도 하던 험한 시절의 궁여지책이었을까.

거짓말하는 이유는 많고도 많다. 비밀을 지키거나, 평판을 유지하거나, 감정을 감추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게 대부분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예의, 수치, 공포, 타인 보호 등의 이유도 있다. 심리학자 에크먼은 거짓말에 ‘속이는 기쁨’이 들어 있다고 했다. 그럴듯한 분석이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악의적인 거짓말’과 ‘이타적인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로 나눠 설명했다. 악의적인 거짓말은 말 그대로 나쁜 의도를 가진 거짓말이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아군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 것, ‘아이가 참 예쁘다’고 헛칭찬하는 것은 이타적이고 선의적인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와 인정에 끌리는 문화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선 유난히 거짓말범죄가 많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법원에 접수된 형사사건 165만6961건 중 사기·공갈이 5만4866건이나 된다. 그러나 인구가 1억2000여만명인 일본의 사기·공갈 사건은 지난해 4만1959건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보다 1만200여건이나 적다. 더구나 공갈은 3633건으로 전년(4172건)보다 500여건이나 줄었다. 전체 형사사건 역시 2010년 101만여건에서 2012년 92만여건으로 줄었으니 우리보다 훨씬 적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여러 견해가 있지만, 일본은 ‘무(武)의 나라’이고 한국은 명분론을 앞세우는 ‘문(文)의 나라’여서 그렇다는 시각도 있다. 말만 앞세우던 ‘입심 대결’의 오랜 관행 탓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거짓말이 횡행하다보니 툭하면 고소·고발로 번진다. 고소·고발 사건은 2011년 62만3350건에서 2012년 67만7039건, 지난해 69만9865건 등으로 매년 늘고 있다.

거짓말의 악취는 정치권에서 가장 심하다. 선거 때마다 무고와 위증, 사기죄로 처벌받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평소에도 그렇다.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간에 금방 들통날 걸 뻔히 알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는 철면피들이 많다. 그야말로 씁쓸한 거짓말공화국이다. 어째 정치판이 좀 잠잠하다싶더니 또 한번 ‘찌라시’ 논란으로 요동을 칠 모양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