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假裝 지배인'도 지배인?
법조계와 보험회사 등 금융업계 간 소송 업무를 둘러싼 갈등이 법적 공방으로 비화하는 등 정면 충돌하고 있다. 변호사 숫자 증가로 어려움에 빠진 법조계가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기업을 고발한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 10월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사법연수원 36기)이 LIG손해보험 지배인 김모씨 등 4명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LIG손해보험이 소송만을 전담하는 가장(假裝) 지배인을 두고 변호사법이 금지하는 법률 대리를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가 수사에 들어갔다.

LIG손해보험은 6월 소액사건에 한해 소송대리인 역할을 하는 지배인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소송의 효율적 측면 등을 감안해 송무팀 직원 4명을 지배인으로 공식 선임했다. 현행 상법 제11조는 상인이 지배인을 둬 영업주를 갈음해 영업에 관한 재판상 또는 재판 외 모든 행위를 대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지배인이 자신이 소속된 회사의 소송을 수행하는 것은 합법이다. 다만 등기만 돼 있고 지배인의 실체를 갖추지 못한 ‘가짜 지배인’의 경우 변호사법을 위반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가장 지배인이 지배인이냐를 놓고 논란이 있다.

김 부회장은 “앞으로 카드회사, 공단 등의 위법행위에 대해 적극 고발조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변회는 지난달 18일에도 메리츠화재 지배인 14명을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금융업계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면서도 변호사들의 마구잡이식 고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달 1일 삼성화재는 20여명의 (가장) 지배인을 지배인 직위에서 해임했다. 동부화재도 지배인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소액사건에 변호사를 이용할 경우 비용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다툼이 없는 사건에서도 절차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변호사들이 자신의 밥그릇 때문에 사회적 비용을 상승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가장 지배인을 쓰지 않는 대신 1억원 이하 단독사건에서 소송대리 허가신청을 내 직원에게 사건을 맡기겠다”며 “빨리 처리할 사건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결과적으로 기업에 비용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며 우려했다.

변호사 숫자 증가로 생겨나는 신풍속도가 기업에 골칫거리만 낳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배석준 법조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