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最古) 은행인 우리은행과 최대 증권사인 KDB대우증권의 최고경영자(CEO) 선출 과정을 되짚어 보면 ‘묘하게도’ 닮은 점이 많다. ‘될 사람’으로 여겨졌던 유력후보가 부상하다가 갑자기 낙마했다는 점이 같다.

난데없이 투서가 쏟아지는 등 ‘막장 드라마’처럼 굴곡이 많은 것도 비슷하다. 논란 끝에 의외의 인물로 분류됐던 이른바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멤버가 CEO 자리를 꿰찬 점도 판박이다.

(1) 유력 후보의 갑작스런 낙마

지난달 초만 해도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연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다. 기류가 바뀐 건 지난달 중순부터다. 이 행장의 연임이 어려울 것이란 말이 돌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청와대와 정치권이었다. 이 행장을 인사검증 대상 1순위로 청와대에 올렸던 금융위원회도 당혹스러워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특정 인물을 우리은행장에 앉히기 위해 움직였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 행장은 지난 1일 갑작스레 연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최근 홍성국 사장을 선임한 대우증권의 반전 드라마도 우리은행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이영창 경영고문(전 부사장)은 홍성국·황준호 부사장 등 내부 출신 후보들과 벌인 3파전에서 선두주자로 꼽혔다. 하지만 10월30일 예정됐던 이사회가 돌연 연기되는 등 사장 선임 절차가 파행을 겪은 후 상황이 급변했다.

회사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몇몇 유력 인사들이 이사회 직전 갑자기 후보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경영고문의 낙점을 막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외부 입김이 작용하면서 판세가 뒤집어졌다는 얘기다.

(2) 난데없는 투서로 ‘진흙탕 싸움’

유력 후보의 낙마 과정도 비슷하다. 투서와 비방이 쏟아지면서 전세가 뒤집어졌다. 이 행장과 관련해선 지난달 중순께 청와대에 각종 비리를 들먹이는 근거 없는 투서가 잇따라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 행장이 작년 6월 우리금융 회장에 오를 당시 인사검증 과정에서 이미 걸러진 내용이 대부분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특정 후보를 밀기 위해 이 행장의 결격사유를 만들려고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경영고문 역시 차기 사장으로 유력시되자 집중포화를 맞았다. 경영본부장 시절 꽃값 7800만원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투서가 논란을 촉발했다. 회사 내부 감사와 노조의 검증을 통해 정당한 경비 집행으로 결론 난 사안이었지만 누군가의 막판 흡집내기용 재료로 확대 재생산됐다.

(3) 결론은 ‘서금회’ 멤버 낙점

‘막장 드라마’로 시끄러워진 뒤 판세가 확 바뀐 점도 닮았다. 예상 밖의 인물이 갑자기 부상하며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우리은행의 경우 이광구 부행장이 차기 은행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대우증권은 과열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이유로 홍성국 부사장이 사장으로 선출됐다. 둘 다 처음엔 눈에 띄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판을 뒤흔든 배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둘 다 서강대 출신이란 이유로 서금회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라는 점을 배경으로 서금회가 정권 실세 등을 움직여 금융권 CEO 선출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금융가에 ‘신(新)관치’가 등장했다는 우려도 이런 관측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장창민/이관우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