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壽' 김병기 화백 "예술엔 완성을 위한 과정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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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현대미술관서 '감각의 분할'展
“예술에 있어 ‘완성’이란 없다. 완성을 위한 과정이 있을뿐….”
2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김병기 화백(99·사진)은 “순간을 뜨뜻미지근하게 보내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뜨겁게 살아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화단의 최고령으로 꼽히는 김 화백은 1916년 4월 평양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서양화를 배운 선친 김찬영 화백의 뒤를 이어 자신도 일본에서 유학하며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새로운 미술세계를 접했다. 1948년 월남해 한국 추상미술의 정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 화백의 인생 역정은 디아스포라(이산 유대인)를 떠올리게 한다. 월남 전에는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후에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과 종군화가단 부단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 강사, 서울예고 설립 초기 미술과장으로도 일했다. 1965년 한국미술협회 3대 이사장으로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했다가 홀연히 미국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1 더하기 1은 2가 되는, 이것도 저것도 있는 ‘절충주의’”라며 예술은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 더하기 1은 2가 되지만 3이나 9 또는 0도 되는, 그래서 제3의 창조적인 게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김 화백은 ‘감각의 분할’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최근 10여년간 그의 신작과 미공개 작을 포함, 회화 70여점과 드로잉 30여점을 선보였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
2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김병기 화백(99·사진)은 “순간을 뜨뜻미지근하게 보내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뜨겁게 살아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내 화단의 최고령으로 꼽히는 김 화백은 1916년 4월 평양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서양화를 배운 선친 김찬영 화백의 뒤를 이어 자신도 일본에서 유학하며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새로운 미술세계를 접했다. 1948년 월남해 한국 추상미술의 정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 화백의 인생 역정은 디아스포라(이산 유대인)를 떠올리게 한다. 월남 전에는 북조선문화예술총동맹 산하 미술동맹 서기장을, 후에는 한국문화연구소 선전국장과 종군화가단 부단장 등을 지냈다. 서울대 강사, 서울예고 설립 초기 미술과장으로도 일했다. 1965년 한국미술협회 3대 이사장으로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석했다가 홀연히 미국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1 더하기 1은 2가 되는, 이것도 저것도 있는 ‘절충주의’”라며 예술은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 더하기 1은 2가 되지만 3이나 9 또는 0도 되는, 그래서 제3의 창조적인 게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김 화백은 ‘감각의 분할’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최근 10여년간 그의 신작과 미공개 작을 포함, 회화 70여점과 드로잉 30여점을 선보였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