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끄러운 '新관치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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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민 금융부 기자 cmjang@hankyung.com
![[취재수첩] 부끄러운 '新관치금융'](https://img.hankyung.com/photo/201412/AA.9353487.1.jpg)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지난 1일 연임 포기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기 앞서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외압’으로 인해 연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속사정을 에둘러 말한 것처럼 들렸다.
이 행장은 단순히 누군가로부터 전화 한 통 받고 물러나기로 한 건 아니다. 연임을 포기하기까지 그의 속내는 복잡했다. 최근 한 달간 ‘악성 루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청와대에 이 행장에 대한 투서와 비방이 쏟아지면서다. 이 행장이 작년 6월 우리금융 회장에 오를 당시 인사검증 과정에서 걸러진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결국 판세는 뒤집어졌다. ‘보이지 않는 손’이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멤버인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을 은행장으로 앉히기 위해 이 행장의 결격사유를 다시 끄집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홍성국 사장을 선임한 대우증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유력 후보로 꼽혀온 이영창 경영고문(전 부사장)은 ‘꽃값 부당사용’ 논란이 터지면서 주저앉았다. 덕분에 역시 서금회 멤버인 홍 사장이 선임됐다.
금융권에선 요즘 ‘신(新)관치’ 또는 ‘정치금융’이 등장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정 인물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 앉히기 위한 수법도 한층 교묘해졌다는 분석도 있다. 물러나게 할 금융사 CEO를 대상으로 각종 비리 의혹을 제기해 상처를 내는 수법 탓이다. 특정 인물에 대한 내정설을 흘려 여론몰이를 하는 것도 새로운 수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을 은행연합회장으로 내정했다는 얘기를 흘려 미리 바람을 잡은 게 대표적 사례다.
과거 정부 고위 관료가 퇴진시켜야 할 금융사 CEO에게 직·간접적으로 ‘물러나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에 비하면 방법이 너무 치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예전엔 그나마 ‘될 만한 사람’ 중 한 명을 골라 낙하산으로 내려보냈지만, 최근엔 예상 밖 인물을 앉히는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론은 뻔하다.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한국 금융의 경쟁력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참 부끄러운 신관치금융시대다.
장창민 금융부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