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대학생 '주소이전 시위'
경희대생 강필준 씨(21·자율전공학과3)는 지난달 말 주민센터를 찾아 제주도 고향집에서 학교 인근 회기동 자취방으로 주소를 바꿨다. 기숙사 신축 허가를 미루는 동대문구청에 화가 나서다. 강씨는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지만 대부분이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투표권이 없어 구청에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며 “표가 되는 원룸 임대업자들의 의견만 듣는 구청을 압박하기 위해 주소를 옮겼다”고 말했다.

대학 기숙사 신축을 위한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 구청과 구의회에 대해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방 출신 학생들도 학교 인근에서 수년간 생활하는 어엿한 주민이지만 구청장·구의회 선거 유권자가 아닌 까닭에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희대에선 ‘선거 때 구청을 표로 심판하자’며 최근 주소를 학교 인근으로 옮기는 학생이 늘고 있다.

경희대는 기숙사 신축을 두고 동대문구와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동대문구가 대학 주변 임대업자들의 민원을 이유로 수개월째 건축 허가를 미루고 있다며 학교 측이 서울시에 행정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경희대는 2012년 교육부의 공공기숙사 건립 대상 대학으로 선정돼 926명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를 학교 운동장에 신축할 계획이지만, 구청에선 ‘환경영향평가를 보완하고 주민 민원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라’며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고려대도 비슷한 상황이다. 고려대는 올 9월 학교 소유지인 개운산 일대에 1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구청 공원녹지과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근 주민들이 휴식공간인 개운산에 기숙사를 짓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하자 구의회는 반대 결의안까지 내놨다. 성북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주민들이 환경 파괴와 원룸 임대료 하락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해 주민 의견을 더 수렴하라고 돌려보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기숙사 신축 허가에 미온적인 구청이 선거 유권자인 임대업자와 인근 주민 눈치를 살피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10월 말 동대문구청과 새정치민주연합 당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인 경희대 학생들은 지난달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기숙사 건립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학생커뮤니티와 학교 페이스북에는 동대문구청을 선거로 심판하기 위해 주소를 옮겼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정이 경희대 총학생회장 당선자는 “학생들도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다”며 “행정심판을 촉구하는 등 기숙사 건립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