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이 세속인이 돈을 버는 것을 정당화한 것은 이런 세네카의 영향이 크다. 칼뱅은 돈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므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신자들이 돈을 많이 벌어 부자로 살면서, 가난한 이웃과 나누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후세 사가(史家)들이 칼뱅주의를 기독교의 세례를 받아 새롭게 탄생한 스토아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칼뱅은 무엇보다 세속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성직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켜주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이었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칼뱅의 철학은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뿌리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대혁명에 참여한 시민 중 칼뱅주의자는 30%였다. 이들이 만든 국민의회는 ‘성직자공민헌장’을 제정해 교회의 토지를 몰수하고 교회 재산에 대한 세제 혜택을 폐지했다. 대신 성직자에게 보수를 주어 국가가 생계를 책임지게 하는 정책을 폈다. 국가와 교회의 대립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1801년 나폴레옹과 교황 피우스 7세가 정교분리를 골자로 하는 종교협약에 합의하면서 논란은 마무리됐다. 이웃 독일은 1826년부터 교회세를 걷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이 대통령령인 소득세법시행령을 통해 종교인에게 과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다. 지난해부터 종교인 소득 과세를 추진해왔으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고 있고 불교도 과세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일부 개신교 교단이 종교 영역은 경제 영역과 다르기 때문에 특수성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1968년부터 46년이나 종교인 과세는 논란을 불러왔다. OECD 국가 중 종교인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유일한 국가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 개신교 교단은 대부분 칼뱅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지금 칼뱅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얘기할까.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