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학습병행제, 中企현장에 답 있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 독일의 중심에는 미텔슈탄트(중소기업)가 있다. 전체 기업의 99.6%를 차지하는 미텔슈탄트는 독일 내 총고용의 60.8%, 국내총생산(GDP)의 51.8%를 창출한다. 마이스터(명장)를 통해 유지·전승되는 이들 기업의 기술력은 개발도상국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 전문성을 갖고 있다. 미텔슈탄트와 히든챔피언, 마이스터는 유럽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독일을 지켜낸 힘이다.

한국도 전체 기업 중 99%가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두각을 보이는 몇몇 강소기업을 제외한 많은 중소기업이 밖으로는 중국 등 후발국가의 맹렬한 추격에, 안으로는 얼어붙은 내수시장과 대·중소기업 불균형 등 구조적 문제와 계속되는 인력난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3년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생산성 향상 추진시 겪는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금 조달 곤란이 26.0%, 다음으로 전문인력 부족이 25.9%다. 채용한 이후에도 문제다. 올해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는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25.2%로 나타났고, 이는 중소기업(31.6%)에서 대기업(11.3%)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신입사원들의 조기 퇴사 이유는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가 47.6%로 가장 높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대책’을 발표하는 등 중소기업 지원과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술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인재 확보를 위한 정책도 적극 추진 중인데 일·학습병행제가 대표적이다. 기업이 젊은 인력을 일찍 뽑아 현장 실무교육과 이론교육을 통해 맞춤형 인재로 키우는 시스템이다. 시행 1년 만에 1900여개의 기업이 참여하는 등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2017년까지 일·학습병행제 참여기업을 1만개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학습병행제로 중소기업 인재 확보의 물꼬를 텄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일·학습병행 기업 담당자들의 공통된 고민은 학습근로자의 이직 문제다. 이직으로 인한 투자 손실 우려에 대해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학습근로자의 인간적인 의리나 정부의 정책에만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직무만족을 좌우하는 것은 임금과 보상 등 외적 동기가 전부는 아니다. 일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 성취감으로부터 생기는 내적 동기는 근무의욕을 고취시키고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독일 강소기업은 이직률이 불과 2.7%다. 독일 전체평균 7.3%에 비해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고 미국의 19%에 비해서는 7분의 1 정도로 낮다. 이들 기업의 직원 중 80% 이상이 직업교육생 출신이다. 일터에서 선배 마이스터로부터 도제식으로 기술을 배워 전문성을 기른다. 이를 통해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키우고 자긍심도 쌓아 나간다. 회사는 학력과 관계없이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고, 자기계발이나 경영 참여기회를 제공하는 등 이들의 성취감과 만족도를 높인다.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는 우리 중소기업도 젊은 인재들이 회사 내에서 비전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필요한 기술과 이론을 가르쳐 학습근로자의 숙련도를 높이는 한편, 스스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결과에 따라 합리적인 보상을 해준다면 일에 대한 성취감뿐만 아니라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 역시 커질 것이다.

정부의 지원이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인재를 직접 가르쳐 키우고 능력에 맞는 대우를 해줌으로써 고급인재를 양성하려는 자구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사람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영범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